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17년 만에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내 4구역이 격전지다.
한남4구역은 서울 중심이라는 입지뿐 아니라 일반 분양 물량이 많고 '한강 조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업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건설사의 조합원 표심 끌기 초점도 '한강뷰' 가구수에 맞춰 있다. 서로가 한강 조망 가구 수가 더 많다고 강조한다. 한강 조망 가능성과 공사·금융 조건 등 두 건설사에 오가는 주장과 반박을 각 홍보관을 방문해 직접 들어봤다.
한강 조망 가구수, 누가 많나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명보빌딩에 위치한 한남4구역 삼성물산 홍보관에 가보니 10여명의 조합원이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 조합원이 "삼성물산 설계대로 한강 조망 가구 수를 현대건설 쪽에서 시뮬레이션해 보니 차이가 있다던데"라고 말하자, 삼성물산 쪽에서는 단지 모형을 놓고 상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삼성물산 홍보관에서는 조합원 100% 한강 조망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원 1166명이 모두 한강 조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면서 "한강 바로 앞에 원형주동('O타워') 4개동을 배치하고 서고동저의 지형과 돌출형 발코니 등을 활용해 최대한 많은 세대가 한강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각 가구 별로 실제 한강 조망이 어떻게 이뤄지는 시뮬레이션 영상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O타워 저층부 일부는 고가도로 아래로 한강이 보이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주변 시설들 때문에 계획한 한강 조망 가구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현대건설) 주장은 말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지반을 높이는 공사 등을 통해 한강 조망권을 목표한 만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삼성물산의 설명이다.현대건설의 공격을 의식한 해명이다.
같은 날 찾은 현대건설 홍보관에서는 "삼성 설계에 따라 자체 인공지능(AI)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삼성물산이 주장하는 한강 조망 가구 수는 1652가구가 아니라 650가구에 불과했다"며 "고가도로의 존재와 한남뉴타운 전반의 개발 상황을 고려하면 삼성물산이 주장하는 '한강뷰' 가구 수는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849가구가 한강 조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자사의 설계가 조합원의 한강 조망권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 조건 놓고도 전방위 '디스전'
사업 조건을 놓고도 충돌했다. 현대건설은 경쟁력 있는 공사비와 짧은 공사 기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남4구역 재개발에 사업에 활용할 우회도로에 대해 맞춤 솔루션이 있다는 게 현대건설의 주장이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3년전 합의봤다면…현대건설 현관 무사했을까?(2024년 9월24일)
현대건설 관계자는 "한남4구역의 외부도로를 활용해 우회도로 공사 때문에 공사가 지연될 일은 없게끔 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이주·철거 이후 즉시 착공에 나서 43개월 안에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실착공 기간 48개월을 제안한 삼성물산에 비해 5개월 가량 짧다. 총 공사비도 1조4855억원으로 삼성물산(1조5695억원)과 비교했을 때 5% 가량 적다.
하지만 삼성물산 측은 "현대건설의 우회도로 솔루션은 특별한 게 아니다"라며 "공사할 때 인근 선행도시계획도로를 활용할 텐데 이 도로를 삼성물산이라고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설령 사용이 불가능해도 우회도로 건설 공사비 30억원 부담 등 대체할 수 있는 해법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비 금리 조건을 놓고도 공박이 오갔다. 현대건설은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0.1%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산금리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제시한 CD금리+0.78%와 비교하면 훨씬 더 저금리여서 조합원에게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현대건설 측은 "가산금리를 무이자로 지원하면 도정법(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 소지가 있다. 조합원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산금리 이자를 낮게 잡았다"고 했다. ▷관련기사'삼성 vs 현대' 한남4 수주전…양사 조건 들여다보니(2024년12월18일)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필수사업비에만 해당 금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추가 이주비나 사업촉진비는 변동금리"라고 반박했다. 이어 "삼성물산은 조합총회에서 결의한 사업비 전액을 해당 금리로 조달한다"고 우위를 내세웠다.
현대건설은 "삼성물산은 (가산금리가) 고정금리라고 하는데 입찰제안서에는 '현시점에 당사가 조달해 대여하는 기준'이라고 조합에 공문을 보냈다"면서 "향후 조달 시점에 대여금리를 협의하겠다면 변동금리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은 삼성물산의 '환급금 제안'에도 딴지를 걸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삼성물산은 조합원 분양계약을 마치고 30일 이내에 100% 지급한다는데 그 시점에는 조합 통장에 돈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소형 평형 주택 놓고도 '공박'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소형 평형 가구 수를 놓고도 대립했다. 앞서 서울시는 한남4구역 소형주택 공급확대 가이드라인 충족을 조건으로 용적률을 20%포인트 상향했다. 하지만 두 건설사 설계에 따른 소형 평형의 공급 비율은 차이가 난다.
현대건설은 삼성물산의 소형 주택 중에서도 초소형 주택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공격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10평(33㎡)대 초소형 주택 비율만 25%에 달하고 이를 임대주택 외에 일반분양으로도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이건 고급 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중에 들어설 고급 커뮤니티 시설과 서비스는 입주자들이 운영해야 한다. 소형 평형이 몰린 특정 블록은 커뮤니티 서비스 운영비 부담을 꺼릴 텐데 제대로 운영이 될까 싶다"고 말했다.
반면 삼성물산은 현대건설의 설계가 시의 소형 주택 용적률 상향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촉진계획에 따르면 소형 주택(60㎡ 미만)이 전체 가구수의 43.07%를 충족해야 하나 현대건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삼성물산의 주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잠실 리센츠의 사례만 봐도 입지만 좋다면 소형 분양 성과도 좋은 것이 확인된다"면서 "현대건설의 소형 평형 주택 비율은 41.37%인데, 이는 서울시의 지침과 다른 것이어서 용적률 인센티브가 삭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공사 결정되면 끝날까?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각각 공사 기간을 제시했으나 실제 사업 기간은 결국 준공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양 사 모두 대안설계를 기준으로 홍보에 집중하지만 설계 실현 가능성도 문제다. 대안설계가 서울시의 인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시공사 선정 이후에도 사업 진척이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현대건설 측 설계 가운데 '공중교량(스카이브리지)'부분을 두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인근 한남2구역 사례와 마찬가지로 남산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한남2구역은 애당초에 고도 제한보다 높이 올리려 한 게 지적받은 것이고 스카이브리지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면서 "한남4구역에서는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삼성물산은 특정 동에 임대주택을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히려 삼성물산의 설계가 문제될 여지가 많다"고도 다시 역공했다.
한남4구역 조합은 경쟁 입찰 성사 이후 3차례의 합동설명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상호 비방이 원색적으로 오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두 건설사의 조합원 홍보관이 정비사업 기준에 맞지 않다는 서울시와 용산구청의 지적을 받았다. 조합은 당초 오는 18일 시공사 선정 총회까지 운영하기로 한 양사 홍보관을 14일에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