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난 건 내 인생 마지막 행운이오. 필요한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소."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던 김모씨는 2001년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충청지역에서 꽤 유명했던 사업가 송모씨였습니다. 송씨는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재산이 많았지만 모난 성격 탓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죠.
김씨가 고독했던 송씨를 따뜻하게 감싸자 송씨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는데요. 송씨는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김씨에게 든든한 경제력을 제공했고 김씨의 정성스런 내조 덕분에 삶의 활력도 되찾았습니다.
여생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한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생략한 채 송씨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송씨가 거주하던 아파트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함께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었죠.
송씨는 김씨에게 벤츠 승용차를 사주고 명품 옷과 가방, 화장품도 마음껏 살 수 있게 용돈을 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씀씀이가 컸던 김씨를 '벤츠 사모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
김씨는 송씨와 동거한 지 5년 만에 인근 지역의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취득했는데요. 입주를 앞두고 1억원 넘게 들여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장식장 소파 등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최고급으로 들여놨습니다.
물론 아파트 취득자금과 인테리어 비용 모두 송씨가 건네준 돈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했던 송씨는 김씨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현금을 인출해 쓰도록 했죠. 뿐만 아니라 생활비 명목으로 김씨의 계좌에 수백만원씩 이체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송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김씨에겐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거액의 재산은 송씨의 자녀들에게 상속됐고 법적으로 배우자가 아니었던 김씨는 재산을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한 겁니다.
오히려 송씨가 생전에 김씨에게 건넨 수억원에 대해 증여세를 내야할 처지가 됐습니다. 국세청은 김씨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송씨로부터 건네 받은 돈에 대해 증여세를 추징했는데요. 김씨가 증여 받은 돈으로 아파트까지 구입하고도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김씨는 송씨와의 사실혼 관계를 강조하면서 부부 사이에 주고 받은 생활비는 증여세를 비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적어도 11년간의 가사노동에 대한 인건비와 남자를 간병한 봉사료 정도는 인정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내세웠죠. 인테리어 비용 역시 결혼생활을 위한 공동 비용으로 인정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국세청은 김씨가 제기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씨가 비과세를 주장한 생활비와 인테리어 비용은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겁니다. 가사노동 인건비와 봉사료도 송씨와 종속적인 지위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었고 김씨가 따로 소득세를 신고한 적도 없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조세심판원도 국세청의 과세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심판원 관계자는 "가사노동의 대가를 정기적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인건비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혼 관계를 시작한 지 5년 후에 지출한 인테리어 비용은 증여세 비과세 대상 혼수용품으로도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혼수용품은 증여세 비과세
타인으로부터 증여를 받아 재산가치가 늘어나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다만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부양가족의 생활비, 교육비, 치료비 등은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혼수용품을 구입한 금액이나 학자금·축하금·부의금 등도 증여세 비과세 대상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