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두면 가격이 더 오를텐데…땅 팔 생각은 말아요." (아내)
"빚을 갚으려면 땅을 파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소." (남편)
1980년 교원 자격증을 딴 김모씨는 그 해 중매로 축산업협동조합에 다니는 이모씨(남편)와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지 8년쯤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갑자기 땅을 사자고 제안했습니다. 경기 하남시에 있는 밭(약 1000㎡)이었는데 개발 호재가 있어 사놓기만 하면 무조건 가격이 오른다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아내도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명의로 토지를 취득했습니다. 부족한 취득자금 1억3000만원은 아내가 대출을 받아서 해결했습니다. 토지를 매입한 직후부터 주변이 개발되면서 가격이 쑥쑥 치솟았고, 부부는 돈방석에 앉을 꿈을 꿨죠.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땅값은 계속 올랐지만 이들 부부에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999년 남편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축협을 그만두게 된 겁니다. 직장을 잃은 남편은 양돈과 양계 사업을 해봤지만 여의치 않았고 빚만 더 늘었는데요.
남편은 제대로 사업을 해보겠다며 하남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2010년 서울 송파구에서 삼겹살 전문 음식점을 차렸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사업에 임했지만 좀처럼 매출이 오르지 않자 3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연이은 사업실패로 빚만 떠안게 된 남편은 하남 토지를 팔아서 빚을 갚자고 했지만 아내는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땅을 팔기가 아까웠습니다.
빚 문제로 갈등을 겪던 부부는 1년간 별거하다가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 직전 아내는 하남 토지의 지분 2/3를 남편 명의로 넘겼습니다.
당시 토지의 감정가격은 25억원(저당권 13억원)에 달했는데요. 저당권을 제외한 12억원 가운데 남편이 8억원 상당의 지분을 증여받고, 아내는 4억원의 지분만 갖게 됐죠. 남편은 아내로부터 증여를 받자마자 토지를 팔고 2014년 5월 이혼과 동시에 잠적했습니다.
국세청은 2015년 남편 이씨에게 양도소득세 5억원과 증여세 2억원을 추징했는데요. 행방불명 상태인 이씨로부터 세금을 추징하지 못하자 이혼한 아내 김씨를 찾아갔습니다. 국세청은 김씨에게 2억원의 증여세를 대신 납부하라며 연대납세의무자로 지정했죠.
김씨는 국세청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심사청구를 제기했습니다. 어차피 토지의 절반은 부부의 공동재산이었고 남편이 아내 몫의 지분(6억원) 중 2억원을 더 가져간 셈이기 때문에 배우자 증여재산 공제 범위(6억원)도 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국세청은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혼하기 전 남편에게 증여를 원인으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했기 때문에 증여세를 내는 게 맞다는 결론입니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도 인정 받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증여세를 내게 됐습니다.
국세청은 "부부가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범위나 재산분할의 비율을 인정할만한 증빙서류가 미비하다"며 "등기부등본에도 증여 및 소유권 이전 사실이 기재된 점을 볼 때 과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국세청 심사청구는 조세심판원 심판청구와 비슷한 유형의 불복 절차인데요. 납세자가 과세 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국세청장에게 직접 제기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심사청구에서 기각 처분을 받더라도 법원 행정소송을 통해 납세자 권리를 구제 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증여세 연대납세의무
재산이나 이익을 무상으로 증여 받은 사람은 국세청에 증여세를 신고·납부해야 한다. 다만 재산을 증여 받은 사람의 거주지가 분명하지 않아 증여세를 징수하기 어려운 경우, 증여한 사람에게 증여세 연대납부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