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산업이 다시 격변기로 접어들었다. 원자력 발전은 글로벌 탈탄소 기조 속 실질적 기저로 재부상하고 풍력·수소 등 재생에너지는 정권 교체와 맞물려 정책 우선순위에 올랐다. 두산은 원전 수출과 풍력 내수라는 양 날개를 앞세워 이 같은 산업 재편 흐름에 제대로 올라탄 모습이다. 체코 원전 수출을 계기로 K-원전 확장판을 노리는 동시에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 수혜까지 기대되는 두산의 행보와 향후 전망을 짚어봤다.[편집자]
체코 원전 수주로 수출 파이프라인을 복원한 두산에너빌리티가 내수 기반의 재생에너지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와 글로벌 탈탄소 흐름 속에서 두산은 원전과 풍력이라는 두 개의 동력을 병행하는 '에너지 이중주' 전략을 구사 중이다.
해외 수주는 기술력을 무기로, 국내 수주는 정책 수요에 발맞춰 대응하면서 불확실한 에너지 산업 재편기에 균형 감각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람·수소·원자로' 두산의 무탄소 지도

두산에너빌리티는 해외 원전 수출과는 별개로 국내에서는 풍력과 수소터빈 등 재생에너지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 두산중공업 시절부터 이어져온 재생 발전기술 포트폴리오가 최근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맞물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풍력 사업의 경우 해상풍력 중심으로 내수 기반을 다지고 있다. 두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자 기술 기반의 해상풍력 발전기를 제작하고 있다. 2020년 국내 최초로 5MW급 해상풍력 인증을 획득했고 2022년에는 8MW급 해상풍력 모델을 상용화해 전라남도 해남, 제주 한림 등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핵심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풍력 기술은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동남권 해상풍력 클러스터 사업과도 맞물려 있다. 산업부는 오는 2030년까지 12GW 규모의 해상풍력 설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정부 수요에 직접 연결되는 내수형 시장 구조 속에서 두산은 국산 장비 공급사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수소터빈 개발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두산은 2020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수소 전소(100% 수소 연료) 발전용 터빈 기술을 확보한 데 이어 오는 2027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270MW급 수소터빈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내 최초 수소터빈 실증 사업으로, 한국남부발전과 함께 창원공단 내 LNG 발전소를 수소터빈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수소 연료를 사용하는 터빈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고 기존 가스터빈보다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어 차세대 무탄소 발전의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두산은 이번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수출형 수소터빈 개발까지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무탄소 발전 기술 확보라는 목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두산은 앞서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와의 협력을 통해 SMR 제작 역량을 키워왔으며 국내에서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함께 차세대 SMR 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SMR을 차세대 에너지 기술로 점찍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TV토론에서 "원전은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지속성의 문제가 있다"며 “과도한 의존은 지양하되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자”고 강조했다. 특히 “SMR은 예외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당시부터 실용적 접근을 시사한 바 있다.
실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SMR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이 마련될 경우 SMR 기술은 현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 아래 정책적 지원이 가능한 기술로 분류된다.
불확실성 속 균형 맞추기

두산의 원전과 재생에너지 병행 전략은 기술 중립성을 기반으로 한다. 정부 정책이 원전 또는 재생에너지를 어느 쪽에 무게를 두더라도 대비가 가능한 구조다. 특히 글로벌 에너지 정책이 정치·외교 변수에 따라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투트랙 포트폴리오'는 리스크 분산 효과도 제공한다는 평가다.
또 다른 이점은 공급망의 유연성이다. 두산은 원전 주기기와 풍력터빈 모두에서 주요 부품을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협력사와 함께 생산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원재료 가격 급등이나 수입 차질 등 외부 변수에 대한 대응력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시장에서는 두산이 구축한 이중 전략이 향후 국내외 정책 변화에 따라 순차적으로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체코 원전 프로젝트는 2027년부터 기자재 납품이 시작돼 2031년까지 이어질 예정으로 두산의 실적에 본격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해상풍력과 수소터빈도 국내 실증과 공급 확대 흐름 속에 내수 매출 비중을 높여갈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두산은 원전, 풍력, 수소터빈 등 무탄소 발전을 구성하는 주요 기술 분야에서 매우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며 "특히 기계공학 기반의 강점을 바탕으로 풍력과 수소터빈 기술을 병행 개발하는 전략은 탈탄소 흐름 속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의 보완재로서 역할을 하는 가스터빈과 더불어 향후 발전이 기대되는 수소터빈 기술까지 두산이 해당 분야에서도 선제적으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전반적으로 에너지 전환기에 대응하는 전략 방향은 잘 설정돼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