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사과를 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검찰 수사가 영국 레킷벤키저 본사로 확대되는 시기와 맞물려 한국법인 옥시레킷벤키저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하지만 진정성을 의심케하는 대목이 엿보였다.
이날 옥시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포괄적 보상안'은 구체성이 결여됐다. 옥시의 피해보상 범위는 1·2 등급 판정 피해자에 한정됐다. 이들을 위해 재원을 얼마나 마련할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보상금액은 피해자들과 합의해 패널이 결정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패널의 구성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3·4 등급 피해자에 대해선 옥시가 앞서 환경부와 환경보전협회에 출연키로 한 100억원의 인도적 기금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번 사과성명 발표에 앞서 옥시 측은 "기금 운용은 환경보전협회에 전적으로 달려있으며 옥시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사법 당국의 칼 끝이 영국 본사로 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대표는 "영국 본사 최고경영자(CEO)가 미안하다면서 자신을 대신해 사과해달라고 요청했다"면서도 "본사는 이와 관련된 조사에는 개입·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프달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영국 본사보다 한국 지사의 문제로 한정시키고자 한 듯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회사강령에 따라 즉각적으로 시정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옥시는 자사가 생산한 가습기 살균제에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자사 제품이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연루됐다는 정도의 톤이다. '당사 직원들은 엄격히 준수해야 할 기업행동강령이 있다', '항상 제품을 제조할 때 세계적 품질기준을 준수하면서 제조한다' 등 자사 윤리강령을 내세우면서, 여론과 동떨어진 답변만 지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피해자측은 옥시의 이날 보여주기식 사과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옥시가 진정 사과하고 싶다면 피해자 한 사람씩 찾아가서 사과의 뜻을 밝혀야 한다"고 말한 대목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한국에서 악덕기업이 없어질 때까지 다같이 노력해달라. 더이상 우리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재발방지책을 논의해달라"고 소리쳤다.
이쯤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보상만이 해결책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옥시 기자회견장에 산소통을 끌고 나타난 어린아이 피해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잊혀지지 않는 이유를 말로 설명해야만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