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6층 남성전문관(MEN’S BOUTIQUE). 한 중년 남성이 스피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언맨 머리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59만원)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춘기 소년 같다. 점원이 볼륨을 키우자 이 남성은 "소리 괜찮다"며 음악을 잠시 듣곤 시선을 피규어 진열대로 옮겼다. "취미로 피규어도 모은다"는 이 남성은 대학생 자녀를 둔 50대다. 그는 "한달에 2~3번 정도 강남점에 들른다"며 "마음에 들면 바로 사고, 구경도 한다"고 말했다.
'아재'들이 변하고 있다. 쇼핑이 귀찮고 패션에 무관심하던 그들이 혼자서 백화점을 찾고 있다. 이제는 백화점 복도 소파에 앉아 투덜대며 부인을 기다리던 그들이 아니다. 이날 만난 한 60대 남성은 "여름바지를 하나 살까한다"며 혼자 매장을 둘러봤다. 그는 "평소에도 옷은 와이프가 아닌 내가 직접 산다"며 명품브랜드 아르마니 매장으로 들어갔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6층 팝업스토어(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아재'들이 쇼핑업계에 큰손으로 뜨면서 백화점도 변하고 있다. 여성 중심으로 매장이 구성되던 과거와 달리 남성들을 위한 공간이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1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남성전문관을 만들었다. 기존 정장 위주의 남성관과 달리 명품, 캐주얼 등으로 다양화했다. 지난해 강남점 신관을 리뉴얼하면서 남성매장 규모는 3157㎡(955평) 더 늘었고, 국내 최초로 루이뷔통·펜디 남성전용매장 문을 열었다.
강남점 남성전문관 관계자는 "작년 3월 강남점 신관이 오픈하면서 남성브랜드가 2배 이상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성들도 이제 원하는 것만 바로 사는 목적구매가 아니라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쇼핑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유행에도 민감해 한정판이 나오는 날이면 백화점이 문 열 때 줄을 서서 구매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6층 남성 의류 매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신세계백화점은 '아재'들을 잡기 위해 매년 '멘즈위크'를 열고 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본점과 강남점, 센텀점, 대구신세계 총 4곳에서만 진행된다.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남성전문관이 구축되고, 구매력 있는 아재들이 뒷받침되는 지역으로 정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5년부터 봄 정기세일 기간도 줄여 멘즈위크 행사를 벌이고 있다. 경쟁사인 현대백화점이 올 봄 정기세일을 3월30일부터 4월16일까지 벌이는 것과 달리 신세계백화점은 3월30일부터 4월9일까지만 봄 정기세일을 진행한 뒤 곧바로 멘즈위크를 시작했다. 매년 100일 이상 진행되는 무기력한 세일 행사를 멘즈위크로 대체한 것이다.
(그래팩 = 유상연 기자) |
'아재'의 힘은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봄 시즌(3~4월) 의류 매출 비중을 보면 남성은 2012년 25.9%에서 2016년 36.6%로 높아졌다. 반면 이 기간 여성 매출 비중은 74.1%에서 63.4%로 줄었다. 이달 10일 기준 남성 매출 비중은 37.1%까지 늘며 증가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남성의 구매력이 커지고 있다. 올 1~3월 신세계백화점 남성장르 매출중 30대비중은 2014년 25.2%에서 2017년 30.5%로 높아졌다. 배재석 신세계백화점 패션담당 상무는 "결혼을 미루면서까지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성들이 백화점의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6층에 들어선 바버샵(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신세계백화점은 남성전문관을 성인 남자들을 위한 놀이터로 만들고 있다. 단순히 옷을 파는 데 머물지 않고 바이크, 드론 등 품목을 다양화했다. 남성전문관 한가운데는 명품 안경과 카메라 렌즈 등을 파는 '멘즈 라이브러리' 매장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 커피숍, 이발소 등도 입점해 있다. 마제스터 바버샵은 이발비가 6만원에 달하지만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남성들이 백화점에 와서 돈을 쓰기보다는 시간을 쓰고 있다"며 "이 곳은 남자들을 위한 놀이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