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그림입니다. 백화점에서 바지를 사는데 걸린 시간은 여자는 3시간26분, 남자는 6분입니다. 이 그림의 출처와 객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페이스북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했습니다.
이런 유머도 있죠. 남자는 꼭 필요한 1달러짜리 물건을 2달러에 사오고, 여성은 별로 필요없는 2달러짜리 물건을 1달러에 사온다.
남자가 쇼핑을 싫어하고 패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통하나 봅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에겐 아재가 있으니까요.
▲ 영화 '고령화 가족' (사진 = 네이버 영화) |
그런데, 쇼핑이 귀찮고 패션에 무관심하던 아재가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화점 복도 소파에 앉아 투덜대며 아내를 기다리던 아재들이 혼자 백화점에 나와 쇼핑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 변화를 보기 위해 지난 17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6층 남성전문관(MEN’S BOUTIQUE)을 찾았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신세계백화점은 2011년 국내 백화점 최초로 강남점에 남성전문관을 열었습니다. 갤럭시 등 정장만 팔던 남성관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했습니다. 지난해 강남점 신관을 리뉴얼하면서 남성 매장 규모는 3157㎡(955평) 더 늘었고, 국내 최초로 루이뷔통·펜디 남성전용매장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이날 이곳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여름 바지 하나 살까한다"며 혼자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옷은 와이프가 아닌 내가 직접 산다"며 명품 브랜드 아르마니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고른 것은 다름 아닌 백바지. 패션 감각이 남다르시더군요.
강남점 남성전문관 관계자는 "남성들도 이제 원하는 것만 바로 사는 '목적구매'가 아니라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면 쇼핑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유행에도 민감해 한정판이 나오는 날이면 백화점이 문열 때 줄을 서서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이곳은 옷만 파는 것은 아닙니다. 드론, 바이크, 카메라 렌즈 등 남자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남성전문관 한가운데 위치한 이발소가 눈에 띄었습니다. 마제스터 바버샵이란 곳인데, 이발비가 6만원에 달합니다. 이 매장 직원은 "이발도 하고 면도도 하고 마사지도 받는다"며 "단골손님이 많다"고 귀띔했습니다.
신세계 관계자는 "남성들이 백화점에 오면 돈을 쓰기보다는 시간을 쓴다"며 "이곳은 남자들을 위한 놀이터"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신세계백화점은 '아재'들을 잡기 위해 매년 '멘즈위크'라는 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본점과 강남점, 센텀점, 대구신세계 총 4곳에서만 진행됩니다.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남성전문관이 구축되고, 구매력 있는 아재들이 뒷받침되야 하기 때문이죠.
신세계백화점은 2015년부터 봄 정기세일 기간도 줄여 멘즈위크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매년 100일 이상 진행되는 무기력한 세일 행사를 멘즈위크로 대체한 것이죠.
'아재'의 힘은 숫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봄 시즌(3~4월) 의류 매출 비중을 보면 남성은 2012년 25.9%에서 2016년 36.6%로 증가했습니다. 반면 이 기간 여성 매출 비중은 74.1%에서 63.4%로 줄었습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남성의 구매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 1~3월 신세계백화점 남성장르 매출 비중을 보면 30대는 2014년 25.2%에서 2017년 30.5%로 증가했습니다. 배재석 신세계백화점 패션담당 상무는 "결혼을 미루면서까지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성들이 백화점의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