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여성인권연대가 "제주소주 푸른밤 마케팅에 성매매 은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된 제품은 '이마트 소주'로 불리는 제주소주가 지난 9월 출시한 푸른밤 짧은밤(알코올 도수 16.9%)과 긴밤(20.1%) 두 제품이다. 이 단체의 지적은 긴 밤과 짧은 밤이 유흥업소에서 성매매 시간을 의미하는 은어로 쓰였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푸른밤은 제품출시 초기 문학적인 브랜드를 붙였다며 호평을 받았다. 1988년 가수 최성원이 부른 '제주도의 푸른밤'이 연상된다는 사람이 많았다. 제품 라벨에는 '별 헤는 푸른밤 잊혀진 그리움을 노래하자'는 문구가 있다. 카스와 하이트, 클라우드 등 외국어 일색인 맥주와 달리 서민적인 소주는 감수성 배인 브랜드가 많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그렇고,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고 신영복 교수가 즐겨 쓰던 문구에서 따왔다.
마케팅에 슬쩍 성을 끼워 넣는 것은 오래된 마케팅 방식이다. 과거 '따먹는 재미가 있다' '강한 거로 넣어주세요' '난 큰 게 좋더라' 등 광고문구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광고를 내리거나 제품판매를 중단한 적은 없다.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한 식품회사는 사장이 직접 광고에 나와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고 외친 덕에 회사 매출이 급성장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긴밤과 짧은밤도 그렇다. 회사측의 해명대로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성매매 은어로 생각하는 상대를 향해 요즘말로 '음란마귀가 씌었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오히려 노이즈마케팅 덕을 볼 수도 있다. 지난해 제주소주를 인수하며 뒤늦게 소주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 이마트가 원하는 방향일 수도 있다.
주류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두 여성에게 물어봤다. A씨는 "연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장난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B씨는 "그렇게 보면 안 그런 광고가 없다"며 "(성매매 은어로 보는 시각은)억지"라고 했다. 신세계그룹의 입장은 더 강경했다. 그룹 관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며 "긴밤과 짧은 밤을 성매매 은어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비하하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단체가 여성을 비하하고 있다는 얘기다.
회사 측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제주여성인권연대는 "고의든 실수든 소비자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고 있다"고 브랜드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여성 단체가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집단은 아니지만 제주를 기반으로 한 소주회사가 그 지역 여성단체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성희롱도 그렇다. 과거 여성들에게 칭찬이었던 말들이 요즘엔 성희롱 대상이 될 수 있다. 판례를 살펴보면 '아침이슬처럼 피부가 맑다' '조카 같아서 그래' 등이 성희롱에 해당된다. 가해자 입장에선 그런 의도는 없었다며 억울할 수 있겠지만 성희롱은 가해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피해자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죄가 성립된다. 더욱이 최근 한샘과 현대카드 등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있다. 이때 구설에 휘말리면 일만 커진다. 의도는 없었더라도 기업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마트가 제주소주를 인수하기 전 제주소주 브랜드는 곱들락과 산도롱 두가지였다. 곱들락은 '곱상한', 산도롱은 '시원한' 뜻의 제주방언이다. 마케팅에 무지한 기자의 개인적 취향으로 본다면 곱들락과 산도롱이 일부 여성들에게 불쾌함을 주고 있는 긴밤과 짧은밤보다 더 나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