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을 달려 어린이 전문병원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아이가 힘겨워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친 아이는 곧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황달과 요로감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가 가능했다. 그것도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나오면 창밖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면회였다.
눈에 안대를 한, 팔뚝보다 작은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아내는 곁에서 내내 울었다. 12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그 아이는 치료를 무사히 잘 마치고 지금은 건강히 잘 자라 매일 밖에서 뛰어논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또 한편으로는 잘 자라준 아이가 무척 고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아프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가 감기에만 걸려도 신경이 쓰인다. 하물며 태어나면서부터 질환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매 순간이 지옥과 같을 터. 정지아 매일유업 아시아모유연구소 소장(상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매일유업이 오래전부터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PKU)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 특수분유를 제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늘 궁금했다. 분명 돈 되는 일은 아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굳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오랫동안 이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매일유업은 그런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 왜일까.
▲ 정지아 매일아시아모유연구소 소장. |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매일유업 본사에서 정 소장을 만났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정 소장의 첫인상은 무척 친근했다. 마치 감기 걸린 아이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가면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의사 선생님 같았다. 아이의 손을 꼭 쥐고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 힘들었겠구나"하고 웃으며 공감해주는 그런 인자한 의사 선생님. 실제로 정 소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출신이다.
"사진도 찍어요? 사진은 안 찍을 줄 알았는데…" 살짝 당황하며 웃는 모습에서는 소녀 같은 감성도 엿볼 수 있었다. 흔히 인터뷰를 하다 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인터뷰이를 만나곤 한다.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인터뷰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다. 반대의 경우에는 인터뷰어가 힘들어진다. 정 소장은 다행히 전자였다. 차분히 설명하는 목소리와 이야기 속에 상대를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정 소장은 소아소화기영양을 전공했다. 대학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매일유업에 합류했다. 정 소장은 "당시 매일유업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된 제품을 만들고 싶다며 영입을 제안했다"며 "매일유업이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들을 위한 특수분유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곳에서 제의했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내년이면 꼭 10년이다.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은 선천적으로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를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 일반 음식은 물론 모유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희귀질환이다. 처음에는 구토, 호흡곤란이 나타난다. 평생 특수분유를 먹으며 엄격하게 식이관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운동발달 장애, 성장장애, 뇌세포 손상에서 심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유전에 따른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유전 대사질환으로 부른다.
정 소장은 "요즘은 아이들이 태어난 지 48시간 이내에 대사 이상 검사를 한다"며 "신생아들의 발뒤꿈치에서 피를 뽑아 검사하는데 이를 통해 선천성 대사 질환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검사가 없었다. 많은 아이가 이유도 모르고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매일유업이 생산하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특수분유는 환아들에게 불필요한 영양소는 제거하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우리 몸속에서 A에서 B로 갈 때 그 과정에 효소가 작용한다"면서 "하지만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의 경우 이 효소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해 A에는 특정 영양소가 과잉 축적되고 B에는 결핍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우리 분유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매일유업이 이 분유를 생산한 것은 1999년이다. 그전까지는 모두 수입한 분유를 먹여야 했다.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이라는 병도 잘 알려지지 않은 때다. 병을 모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입 분유는 고가였다. 많은 아이가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앓았지만 초기 대응 시기를 놓쳐 평생을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 소장은 "과거에는 선천성 대사이상을 진단한 의사 선생님들이 우리 쪽에 연락을 해왔다. 환아를 위한 아미노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환아의 상태에 맞춰 가루형태의 아미노산을 보내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사 이상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접한 매일유업 창업주 고(故) 김복용 회장은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앓는 환아들을 위한 특수분유 제작을 지시했다. 정 소장은 "선대 회장께서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용 특수분유를 만들라고 하셨다"면서 "단, 10년간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당시만 해도 희귀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편견이 있었다. 이 분유를 먹는 환아들이 그런 시선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10년 동안 이 일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한다면 그때는 널리 알려도 좋다고 하셨다. 그 유지를 지금까지 지켜왔다. 10년이 넘었고 이제는 매일유업의 대표적인 전략적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나마도 최근 들어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선대 회장께서 이 사업만큼은 비용에 문제가 있어도 중단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고 밝혔다.
고 김복용 회장의 이런 주문은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앓고 있는 국내 환아와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 매일유업이 20년째 매년 손실을 보면서도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용 특수분유를 제작하고 있는 이유다. 정 소장은 "국내에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는 대략 400~500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며 "종류도 환아들의 상태 등에 맞게 세분화해 12가지 종류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유업체 중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특수분유를 제조하는 곳은 매일유업이 유일하다. 미숙아나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특수분유도 제조한다. 일반 특수분유는 다른 유업체들도 만든다. 매일유업은 일반 특수분유 역시 가장 많은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 분유는 물론 특수분유 분야에서도 매일유업의 기술력은 정평이 나있다.
매일유업은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환아들과 가족들의 행사인 PKU캠프를 올해로 18년째 후원하고 있다. 더불어 이 질환을 앓는 환아와 가족들이 쉽게 외식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 매일유업이 운영하는 외식브랜드인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쉐프들과 함께 특수 제작한 레시피와 음식으로 '하트밀 만찬'이라는 행사도 열고 있다.
정 소장은 "환아들의 모임에 가보면 처음 우리 분유를 먹었던 아이들이 온다. 그 아이들이 이제 스무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환아와 그 가족들 중에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다. 그는 "한 가족은 형제가 모두 선천성 대사이상이었는데 형은 우리 분유를 몰라 지금까지 장애가 남아있다. 반면 동생은 우리 분유를 먹고 지금 정상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가장 궁금했던 수익성에 대해 슬쩍 물었다. 그러자 정 소장은 "솔직히 손해를 많이 보는 제품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이 사업의 수익에 대해선 열외로 따진다"면서 "1년에 2번 생산하는데 되도록이면 폐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가격도 일반 분유 가격과 비슷하게 맞추고 있다. 손해긴 하지만 선대 회장님의 유지도 있었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수분유 사업은 저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도 계속할 생각"이라며 "아이들을 위한 좋은 이유식, 영양간식 등은 계속 필요한 영역이다. 앞으로 생애 전주기를 커버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그토록 어색해하던 사진 촬영도 무사히 끝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끊임없이 환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로 복귀하는 내내 환아와 그 가족들 이야기가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그들을 20년째 묵묵히 지원해온 이들의 노력이 새삼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그날 새벽 큰 아이를 들고 병원으로 뛰었던 생각이 났다. 고마웠다. 오늘 퇴근길에는 큰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 한마리 사들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