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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속 '노마진' 제품의 진실

  • 2020.11.12(목) 14:49

'로스 리더 마케팅'의 일환…미끼 상품 역할
기업 이미지 제고·공익 향상 위한 '착한 제품'도

김장철입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은 2500원 수준입니다. 절임배추 한 포기는 3500원 수준이죠. 절임배추 한 포기에 들어가는 소금과 물, 인건비가 포함된 가격입니다. 산지에서 같은 가격에 매입한 배추라면 절임배추로 만들어 파는 것이 '마진(margin)'이 높습니다.

유통업의 기본은 마진입니다. 원가와 판매가의 차액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마진은 클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유통업계에는 마진이 아주 적거나 아예 마이너스인 상품들이 많습니다. 팔아도 돈을 벌지 못하는 '노마진' 제품을 유통업체들이 취급하는 이유는 뭘까요?

◇ 전체 매출 상승 꾀하는 '미끼' 마케팅

일반적으로 노마진 제품은 고도의 마케팅 전략입니다. 유통업계에서는 '로스 리더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전략입니다. 일반 판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팔리는 제품을 '손해를 본다'는 뜻으로 로스 리더(Loss Leader)라고 부릅니다. 로스 리더 마케팅은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의 유통업체가 자주 사용합니다. 대량구매를 통해 확보한 제품들을 미끼로 내놓고 소비자들을 유인, 결과적으로 더 큰 이윤을 남기는 전략입니다.

대표적으로 편의점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1+1'이나 '2+1'으로 팔리고 있는 제품이 로스 리더 마케팅 사례입니다. 제품을 하나만 사려 했는데 하나를 더 주게 되면 소비자는 이를 '인센티브'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소비 만족도를 올리고 지속해서 제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런 방식의 마케팅은 재고를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1' 행사 제품은 대부분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류입니다. 재고가 쌓이면 반품문제로 골치가 아파지는 것들입니다. 식품업체 입장에서도 '+1' 행사를 통해 짧은 시간에 시장 점유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점유율 경쟁이 치열한 캔커피에 '+1' 팻말이 자주 붙는 이유입니다.

노마진 제품을 사기 위해 매장에 들리는 고객들이 다른 제품도 구매하게 되는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끼'입니다. 주로 대형마트에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대형마트의 세일 전단지를 보면 매장당 한정판매되는 제품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품의 상당수가 마진을 포기하는 대신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 쓰입니다.

◇ '로티세리 치킨'·'초저가 와인'이 대표적

행사가 아니라 상시로 판매되는 노마진 제품도 있습니다. 코스트코의 로티세리 치킨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수십 년째 팔리고 있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이 제품은 팔릴수록 코스트코가 적자를 봅니다. 판매가가 생산단가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닭은 미리 염지한 국내산 13호 닭을 씁니다. 닭을 염지하면 '가공품'이 되기 때문에 납품을 받을 때 부가세 10%가 더 붙습니다. 13호 생닭은 시중 소매가로 6000원이 넘습니다. 코스트코는 대량으로 도매가에 납품받기 때문에 유리하지만 부가세가 붙어 마진이 줄어듭니다. 게다가 그걸 받아와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꼬챙이에 끼워 오븐에 구워야 합니다.

마리당 포장도 따로 합니다. 인건비와 가스비, 포장비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코스트코 로티세리 치킨의 가격은 마리당 6500원 수준입니다. 원가 이하의 가격입니다. 미국에서는 로티세리 치킨을 팔아 매년 3000만~4000만 달러의 적자를 입는다고 합니다.

로티세리치킨을 파는 것은 코스트코 입장에서 회원 유치와 고객 재방문에 매우 유리한 전략입니다. 또 치킨과 함께 음료수와 맥주, 과일, 야채 등을 함께 사가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 코스트코는 각종 채널을 통해 로티세리 치킨을 활용한 레시피를 공유, 요리재료의 판매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기가 높은 초저가 와인도 로스 리더 마케팅의 일환입니다. 초저가의 와인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와인잔과 와인셀러뿐만 아니라 육류와 치즈 등 안주의 매출이 발생합니다. 저가 와인으로 입문한 소비자가 고가의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편의점 등에서 많이 팔리는 4캔에 1만원을 받는 수입맥주 번들세트도 안주를 팔기 위한 미끼입니다. 

로스 리더 마케팅은 가끔 역효과를 부르기도 합니다. 가격경쟁력이 부족한 영세상인 입장에서는 가혹하다는 이유입니다. 지난 2010년 논란이 됐던 이마트의 '이마트 피자'와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 제품들은 아주 가격이 아주 낮게 책정됐습니다.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았지만 일반 피자가게와 치킨집 등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 '공익'위해 적자 감수하는 제품도

한편 미끼 역할도 없어 정말로 팔리면 팔릴수록 회사에는 손해만 입히는 제품도 있습니다. 공익을 위해 판매되는 제품으로 수익성은 희생하지만 사회공헌 활동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사회적 가치 실현 측면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주로 생산업체가 직접 유통하거나 기부를 통해 고객에게 무상지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분야의 대표 제품은 매일유업의 특수 분유입니다. 매일유업은 단백질 소화를 위한 효소가 부족한 페닐케톤뇨증(PKU) 환자들을 위한 유아용 특수유아식 8종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PKU환자의 경우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 경련이나 정신지체, 지능장애 등 발달장애가 밸생할 수 있습니다. 평생동안 엄격한 식이조절로 단백질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병입니다. 

매일유업은 고(故) 김복용 창업주의 지시로 지난 1999년 특정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성분을 보충한 특수 분유를 개발했습니다. 매일유업은 일 년에 두 차례 공장 가동을 멈추고 특수 분유 생산을 위해 설비의 해체와 세척 등을 진행합니다. 원료도 일반 분유보다 많이 들어가기 때문 단가는 일반 분유보다 수백배 비쌉니다. 그러면서 가격은 일반 분유보다 싸게 팔고 있습니다. 특수 분유 생산으로 연간 약 4억 원 수준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계속된 연구·개발과 PKU 환자에 대한 별도의 후원활동도 진행합니다. 

CJ제일제당도 PKU환자를 돕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저단백 햇반'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저단백 햇반은 일반 햇반과 비교해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10배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쌀을 도정한 뒤 밥을 짓기 전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추가로 특수 공정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 단가는 일반 햇반보다 크게 높지만 가격은 일반 햇반과 차이가 없습니다. 당연히 팔수록 적자입니다. 

이 밖에 유한킴벌리도 2017년부터 미숙아(이른둥이)용 기저귀를 전국의 주요 대학병원 및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무상지원용 제품임에도 전용 생산라인을 따로 갖췄습니다. 신생아용 제품이다보니 가격이 비싼 고급재료인 사탕수수 섬유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1만 5000명이 넘는 미숙아들에게 228만 장의 기저귀가 지급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유통업체들은 각자 다양한 이유로 노마진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익과 손해를 나누는 기준이 '마진'만 있지는 않다"며 "노마진 상품을 통해 다른 제품 매출을 올리거나 일명 '착한제품'을 생산해 이미지를 제고하고 공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기업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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