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에 올해는 참 힘든 한 해인 듯합니다.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이번에는 6년간 대표를 맡아왔던 이갑수 대표가 물러납니다. 이마트의 적자는 업계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적자 규모가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던 탓입니다. 그동안 대형마트 1위 업체로 굳건한 시장 지위를 누려왔던 이마트 입장에서도 무척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이 탓에 실적 발표 당시 업계 일각에선 이 대표가 이번 정기 인사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2014년 이마트 대표에 올라 지금껏 이마트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인물입니다. 그만큼 이마트를 총괄하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이 대표에 대한 신임은 굳건했습니다. 물론 한번 쓴 사람은 끝까지 믿고 쓰는 신세계그룹의 기업문화도 작용했을 겁니다.
이마트는 적자를 기록한 이후 더욱 발 빠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정 부회장의 주문에 따라 '상시적 초저가' 제품을 매달 쏟아내고 있습니다. 초저가 정책은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서울 및 수도권의 알짜 매장을 자산으로 하는 사모 부동산 펀드를 준비 중입니다. 이를 통해 유입되는 1조원가량의 자금을 바탕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계획입니다.
첫 분기 적자 이후 이마트가 보여준 행보는 지금껏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그동안 국내 대형마트 부동의 1위 업체로서 누려왔던 여유로움은 싹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 묻어납니다. 더 이상은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후속 조치들을 진두지휘했던 것이 이 대표였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결국 교체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주요 임원들에게 "저는 떠나지만 남은 사람이 각자 소임을 다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실상 '경질'인 셈입니다. 이 대표를 경질할 수 있는 사람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뿐입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 6년간 신임했던 이 대표를 내보내기로 결심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번 인사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단순히 이 대표의 교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신세계그룹은 12월에 정기인사를 단행해왔습니다. 인사 폭도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큰 과오가 없다면 믿고 가는 것이 지금까지 신세계그룹이 가져왔던 인사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시기가 확 앞당겨진데다 이마트를 중심으로 인사 폭도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이마트의 이런 갑작스러운 행보의 중심에 정 부회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세계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이마트의 실적을 받아보고는 무척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적자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규모가 문제였다.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준비해왔던 것으로 안다. 이번 인사는 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대표 교체는 이마트의 실적 부진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정 부회장이 이 대표를 사실상 '경질'한 것에는 숨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6년을 믿고 맡겼던 이 대표입니다. 적자 이후 이 대표의 행보도 크게 흠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했고 나름의 성과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정 부회장이 이 대표를 물러나게 한 것은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적기는 이 대표가 물러날 적기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변화를 위한 적기라는 뜻입니다. 이마트 실적의 급전직하는 다들 아시다시피 온라인의 성장 탓입니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이마트로선 이런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국내 유통업체 중 가장 발 빠르게 온라인 통합을 시도했고 이를 위해 외부에서 조(兆) 단위의 자금을 유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의 질주를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출범한 SSG닷컴은 11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오프라인 사업의 부진은 심각했습니다. 야심 차게 선보인 전문점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마트의 온·오프라인 채널들이 모두 부진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을 더는 끌고 가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은 지금이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여기에서 흐름을 끊겠다는 메시지인 셈입니다. 이 대표 후임으로 온라인 전문가인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불어 더 이상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전략,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이마트를 중심으로 약 10여 명의 임원들을 물갈이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요 임원들을 물갈이해 조직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기존 멤버들에게도 일종의 '경고성 시그널'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정 부회장이 앞으로는 확실하게 이마트를 장악하고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힙니다. 올해 초 정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이마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마트의 행보는 이 방향에 확실하게 부합했다고 보기엔 다소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승계 문제가 남아있는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이마트에 대한 정 부회장의 직간접적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마트는 다시 한번 변곡점에 섰습니다. 대표 교체에 담긴 의미는 매우 큽니다. 단순히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인사로 보기엔 그 안에 함축돼있는 정 부회장의 메시지의 무게가 무척 무겁습니다. 좀 더 큰 시각으로 보면 이마트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국내 유통업계에 던지는 또 다른 화두이기도 할 겁니다. 이마트가 앞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국내 유통업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