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 업계에는 다양한 규제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롯데와 신세계 등 대형 오프라인 업체들이 가장 불만인 규제는 바로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입니다.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이면 대부분 대형마트 점포가 문을 닫아야 하는 규제입니다.
대형마트가 실적이 좋을 때는 해당 업체들도 겉으로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이커머스 업체가 몸집을 불려가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런 업체들에 밀려 대형마트의 존재감은 줄어만 가는데 왜 우리만 규제를 받아야 하냐는 불만이 커졌습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불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일부 소비자들은 불안감에 사재기를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규제 탓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장을 봤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무휴업일 규제가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 시장'으로 쏠리는 모습을 봤으니,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도 인식할 것으로 봤습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규제 역시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게 웬일일까요. 정치권에서는 되레 규제 대상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기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만 적용했던 규제를 복합쇼핑몰과 면세점, 백화점 등까지 포함하겠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내용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풀어달라고 했더니 더욱 옥죄겠다는 겁니다.
업계에서는 "마치 규제의 덫에 걸린 것 같다"며 답답해 합니다. 곤란한 곳은 오프라인 업체뿐만이 아닙니다. 여권에서는 이커머스 규제에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 등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영업시간과 취급 품목을 제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소상공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로켓배송도 규제하겠다는 겁니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식자재마트'도 규제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말 식자재마트도 대형마트에 준하는 규제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대형마트가 휴업하면 시장의 중소상공인이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대형 식자재마트가 이권을 가져가니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이 법안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을 살리자는 겁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존 규제로는 전통 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리지 못하니 자꾸 규제 강도만 높이는 겁니다. 더욱 센 규제를 만들면 된다는 식입니다.
규제 취지에 따르면 대형마트를 쉬게 하면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아울렛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쿠팡에서 장을 봤고, 동네 대형 식자재 마트에 가서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하나하나 다 규제하겠다는 게 지금 정치권의 모습입니다.
규제 대상을 확대하더라도 소비자들은 또 다른 채널을 찾아 이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다시 그 채널을 규제해야 할 겁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규제의 덫'에 걸린 것은 유통 업체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시장조사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3%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폐지하거나 평일로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대형마트에 못 가게 됐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전통시장을 방문했다'는 응답은 8.3%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전경련은 대형마트 업체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이긴 합니다. 회원사에 유리한 조사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많은 이가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일 겁니다. 이런 규제가 전통시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증명되고 있고요.
무작정 규제를 강화하고 그 대상을 확대하려는 '손쉬운'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선거 때만 반짝 시장을 돌아볼 게 아니라 제대로 머리를 싸매고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이런 식의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전통시장 외에는 모두 규제해야만 하는 덫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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