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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동행세일에는 '동행'이 없다

  • 2021.06.23(수) 15:48

행사 흥행 견인하는 유통업계 규제 지속
진정한 '동행' 이끄는 것이 정부의 할 일

대한민국 동행세일이 내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진행된다.

정부 주도 대규모 할인 행사 '대한민국 동행세일(동행세일)'이 내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진행된다. 동행세일은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시장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업계에서는 보복소비 등으로 올해 동행세일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변하지 않는 행사 진행 방식과 세일 동참을 요구하면서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는 풀어주지 않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진행된 동행세일은 비슷한 유형의 '코리아 세일 페스타'에 비해 큰 성과를 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동행세일 기간 신용·체크카드 승인액은 총 38조3000억원이었다. 이는 코로나19가 없었던 2019년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한 수치다. 행사 초기 재고 면세품이 오프라인에 풀리며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 유통업계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합쳐지면서 낸 성과다.

올해 동행세일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상반기 들어 소비심리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백신 접종이 활성화되면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보복소비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업계의 동참도 활발하다. 백화점 3사는 전 부문에서 최대 50% 할인 판매를 진행한다. 대형마트·편의점·이커머스 플랫폼도 각자 프로모션을 전개한다. 전국 각지의 전통시장 등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한다.

다만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동행세일이라는 이름과 달리 '동행'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행사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이번 동행세일 기간 동안 대형마트는 행사 첫 주와 마지막주 일요일에 의무휴업을 해야 한다. 할인 행사에 대한 관심도는 행사 기간 첫 주말과 마지막 주말에 가장 높다. 이를 고려하면 대형마트가 얻을 수 있는 동행세일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동행세일의 주력 지원 대상인 전통시장에서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사업 규모가 작은 전통시장 상인은 할인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상품 판매량이 많지 않아 매입 단가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서다. 이에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단순히 범국가적 할인 행사를 통한 소비심리 촉진보다 각 시장의 특성에 맞는 '핀 포인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행사의 내실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계가 운영 부담을 상당 부분 짊어지는 현재 상태로는 소비자의 더 큰 관심을 불러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적 세일 행사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제조사의 참여도 활발하다. 많은 제조사가 재고 상품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판매하는 문화가 정착돼있다. 80% 할인, 90% 할인과 같은 파격적 정책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반면 국내의 대규모 세일 행사는 유통사가 상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구조에 변화가 없다. '팔던 상품을 좀 더 싸게 파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유통 마진이 곧 수익이 되는 유통업체가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하기 어렵다. 이런 구조적 한계 탓에 동행세일 등 행사가 산업 사이의 유기적 결합이 되지 못하고 따로국밥식 세일 전시회가 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들은 매년 정부 주도 세일 행사때마다 나온다. 그만큼 고질적인 병폐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업계에서는 정부와 국회가 단순히 행사의 개최에만 의의를 두고 있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동행세일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사업임에도 내실보다는 보여주기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동행세일 행사장 전경.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정부와 국회의 이러한 움직임은 유통 규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등의 규제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들의 주요 내용은 출점·영업시간 제한 등이다. 특히 백화점·복합쇼핑몰 등 기존의 유통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업태로까지 규제를 적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의 권익과 생존권 확보가 이들 법안의 명분이다.

유통업계는 법안 논의 초기부터 반대 의견을 내며 소통을 요구해 왔다. 복합쇼핑몰이 대부분 교외에 위치해 전통시장과 접점이 없고, 백화점과 이커머스는 주력 고객이 전통시장과 다르다는 등 나름의 근거도 제출했다. 이에 대해 정부·국회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한 규제를 담은 법안이 제출될 뿐이었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최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 등의 이커머스 사업에 의무휴업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이는 업계와의 소통의 결과라기보다는 MZ세대 유권자들의 여론에 떠밀린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유통 시장을 둘러싼 논쟁에서 유통업계의 이야기가 배제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거듭되는 '불통'에 유통업계의 피로감도 고조되고 있다. 매번 진행되는 국가적 세일 행사에 앞장서 흥행을 주도하지만, 상응하는 화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토로다. 업계 관계자는 "동행세일 등이 유통업계에게 긍정적 기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규제는 규제대로 하면서 할인은 할인대로 하라는 정부 기조에는 불만이 많다"고 밝혔다.

정부와 국회는 유통업계를 둘러싼 현안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특정 논리에 매몰돼 있는 정책으로는 시장 경쟁력을 살릴 수 없다. 특히 유통 시장은 어느 때보다도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커머스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존 유통기업들의 변신도 활발하다.

하지만 시장을 이끄는 큰 틀을 마련해야 할 정부와 국회는 정작 변화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정책적 지원이 없다면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업계의 노력도 빛을 잃는다. 정책과 시장이 충돌한다면 그 시장은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동행세일 등과 같은 단발적 행사에 치중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업계와의 소통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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