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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우려되는 이유

  • 2021.07.21(수) 15:40

우유 제외 식품에 2023년부터 적용
실효성에 '의문'…철저한 사전 교육 필요

2년 후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식품에 표시된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2년 뒤 우유를 제외한 식품에서 '유통기한'이 사라진다. 대신 '소비기한'이 적용된다. 계획적 식품 생산과 폐기 비용 감축을 목표로 한다는 취지에서다. 업계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취지에는 긍정적이다. 다만 제도 도입이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실효성이 낮고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책 기조 변경에 제도 도입 '급물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최근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하는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2023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된다. 다만 우유·치즈 등 냉장 유통의 중요성이 높은 식품에는 제도 도입이 유예됐다. 이들에게는 2031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가 적용된다.

유통기한은 식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간이다. 유통기한은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전체 기간의 60~70% 이내에서 결정된다. 반면 소비기한은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이다. 유통기한에 비해 20~30%정도 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기한이 적용될 경우 우유는 기존 유통기한에 비해 약 40일, 두부는 두 달 이상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이 크게 늘어난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환경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온실가스 감축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외식·식품업게 역시 재고 관리 효율성 등을 이유로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었다. 다만 정부는 소비자와 업계가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다.

정부의 태도가 바뀐 것은 최근 개최된 'P4G 녹색미래 정상회의' 이후다. 당시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식품·의약품 분야 제도 정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비기한 도입을 통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통해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정책 기조 변경이 제도 도입을 서두르게 된 이유인 셈이다.

중소 유통업체·기업 부담 가중

업계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결정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소비기한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소비기한 표시제로 업계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늘어난다. 철저한 사전 소통과 정책 연구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비기한은 식품을 최대한 긴 시간동안 유통시키는 것이 목표다. 철저한 '콜드체인 시스템'이 필수다. 제품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온도 관리가 필요하다. 각 제품별로 상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별도의 유통 방법도 마련돼야 한다.

소비기한 도입을 위해서는 유통 전반에 '콜드체인'이 적용돼야 한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이는 일선 유통업체의 관리 부담을 가중시킨다. 국내 식품 유통 시장의 20~30%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슈퍼마켓이다. 이들은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달리 관리에 필요한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하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될 경우 진열 제품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도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으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재고 관리 기간이 길어진다. 재고를 보관하는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나아가 소비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보다 더 큰 폭의 할인 등 프로모션을 적용해야 한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이러한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더라도 재고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세일 등으로 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여력도 크다"며 "반면 중소기업은 인프라·비용 문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오히려 자체 폐기율이 높아지거나 재고를 감안해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효성은 '글쎄'…소비자 피해 우려도

소비기한 표시제의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내 소비자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긴 제품을 구매하려 한다. 유통업체가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제품을 판매대 앞에 진열하더라도 뒷부분에 진열된 제품을 굳이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만료가 곧 폐기를 의미하는 소비기한이 도입된다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정책 의도와 달리 폐기 제품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피해도 우려된다. 국내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에 익숙하다. '냉장고에 보관하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인식도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더욱 엄격히 제품 보관 온도를 관리해야 한다. 지금처럼 냉장고에 빽빽하게 보관한다면 실질적인 보관 온도가 낮아져 변질 우려가 높아진다. 자칫 정상적으로 제품을 보관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소비자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전문가들은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에 앞서 제도 보완 및 사전 홍보·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비기한을 다소 보수적으로 설정해 유통 현장의 관리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유통기한을 병기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해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준비가 선행되지 않으면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은 기업·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졸속 정책'이 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기한 도입은 환경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가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하는 제도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적 사전 홍보 및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업계에게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관리 지침을 명확히 정하는 등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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