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늘 나오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바로 올해부터 바뀌는 정책이나 법 등을 설명해 주는 기사입니다. 올해 식품업계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소비기한' 도입이었죠. 큰 이슈인 만큼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소비기한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나왔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소비기한의 시대'가 시작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분명 새해가 됐는데 바뀐 게 없습니다. 소비기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마트나 편의점에서 한 번쯤 살펴보셨겠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여전히 제품에 '유통기한'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표기를 소비기한으로 바꾼 곳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를 소비기간 도입 계도 기간으로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모두 쓰인다는 의미입니다. 선제적으로 소비기한을 도입하는 기업도 있지만 신제품은 소비기한을, 기존 제품은 유통기한을 쓰는 식으로 병행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소비기한을 표기하는 기업들도 아직까지 실제 기간은 유통기한의 기준을 따르는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소비기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갑자기 늘어난 '유통기한'을 보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소비기한 정책의 효과를 보기는 어려운 셈이죠.
그런데, 기업들이 소비기한 도입에 머뭇거리는 걸 보면 의아합니다. 소비기한을 빨리 도입하는 게 기업에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통기한에 비해 판매해도 되는 기간이 긴 소비기한을 적용하면 식품 폐기에 따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통·재고 관리 면에서도 편의성이 높아집니다. 기업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식약처가 공개한 참고값을 보면 두부의 경우 유통기한은 7~40일이지만 소비기한은 8~64일로 최대 20일 이상 차이가 있습니다. 참치캔은 유통기한이 5년이지만 소비기한으로 바꾸면 10년 이상으로 정해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대체로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20%가량 길다고 보면 맞습니다. 똑같은 제품을 20%나 더 오래 팔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럼에도 기업들이 소비기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건 혹여나 모를 사고를 대비하는 마음이 커 보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변질 문제가 있겠죠. 소비기한은 온도와 습도 등 각 제품에 맞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을 경우를 가정합니다. 기간 내라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변질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유통기한 시절에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소비기한은 기간이 더 긴 만큼 변질될 수 있는 상황에 더 많이 처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변질 우려가 높은 우유의 경우 냉장 보관 기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소비기한 적용을 2031년으로 유예하기도 했습니다.
자사 제품의 최적 소비기간을 뽑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식약처가 주요 제품군의 소비기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결국 기업들이 유통기한보다 대폭 늘어난 소비기한을 명시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자체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지난해 8월 도입이 결정됐습니다. 기업들이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백, 수천가지 제품들의 소비기한 테스트를 완벽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소비자의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계도기간을 충분히 활용해 소비기한을 산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는 있지만 내년부터는 선택의 여지 없이 소비기한을 도입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더 오래 팔기 위한 것이 아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업들도 이를 다시 한 번 되새겨 소비기한 도입에 적극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유통기한의 '유통기한'은 올해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