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대학생 시절 유통기한이 2년 정도 지난 참치캔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다 먹고 나서야 유통기한을 발견했죠. "큰일났다"는 생각과 함께 배가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응급실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했고요. 비상시 절 데리고 병원에 가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은 평안했습니다. 유통기한이 1주일 가량 지난 과일 주스를 먹었을 때와 달리 아무런 문제가 없었죠.
이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많습니다. 100년 지난 통조림을 먹어본 '용자'가 멀쩡하다는 기사는 꽤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통조림과 비슷하게 밀폐된 공간에 보관됐던 식품이 수천 년 동안 형태를 유지했다는 뉴스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통조림에는 이런저런 말이 붙습니다. 누군가는 통조림을 방부제 덩어리라고 생각합니다. 제조 과정에서 영양이 파괴됐을 거라는 의견도 있고요. 캔에서 유해물질이 잔뜩 나온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죠.
이런 이야기들은 과연 진실일까요. 참치 통조림의 고수 동원에게 물었습니다. 먼저 통조림에는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기한인 소비기한은 10년 이상이 보장됩니다. 이는 제조 과정 덕분입니다. 통조림은 용기에 내용물을 담고, 공기를 제거한 후 뚜껑을 덮어 밀봉해 만들어집니다. 멸균 과정도 거치죠. 균이 아예 없는 식품이 공기와 접촉하지도 않게 되는 셈입니다. 방부제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캔햄과 참치캔의 유통기한은 다릅니다. 캔햄은 3년이지만, 참치캔은 7년 정도죠.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캔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참치캔의 몸통 부분은 철, 뚜껑은 알루미늄입니다. 캔햄은 몸통과 뚜껑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지고요. 철은 알루미늄에 비해 충격에 강하고 공기를 덜 투과시킵니다.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변질되지도 않고, 내용물의 상태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습니다.
통조림 캔에서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말은 절반만 사실입니다. 유해물질이 어느 정도 나오는 것은 일단 맞습니다. 통조림 캔 내부는 부식 방지를 위해 '에폭시수지'로 코팅됩니다. 이 에폭시수지에서 환경호르몬의 한 종류인 '비스페놀A'가 나옵니다. 다만 그 양이 매우 적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통조림의 비스페놀A 함량 기준을 0.6ppm으로 설정했습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통조림 대부분이 이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고요.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통조림 내용물에서 나오는 '퓨란'이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퓨란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열처리하면 생기는 물질입니다. 발암물질이지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수준인 2군B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습니다. 퓨란과 같은 군에는 스마트폰·커피가 포함돼 있습니다. 심지어 '항암 식품'으로 알려진 김치까지도요. 통조림을 먹고 암에 걸렸다는 보고도 아직 없습니다. 퓨란에 대한 걱정이 '기우'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양소 파괴도 우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입니다. 통조림은 열처리 공정을 거칩니다. 비타민과 같이 열에 민감한 영양소는 어느 정도 손실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손실량은 우리가 직접 요리할 때와 비슷합니다. 게다가 영양소 손실이 적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2013년 미국 오리건대 연구팀에 따르면 통조림 복숭아와 천연 복숭아의 영양 성분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타민C나 엽산은 통조림 복숭아에 더 많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개봉한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어떨까요. 더 오래된 통조림의 내용물이 더 빨리 상하지는 않습니다. 밀봉돼 있던 기간 동안 변질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이후 보관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개봉한 통조림은 오히려 천연 식품보다 빨리 상할 수 있습니다. 캔의 금속이 부식을 일으키며 변질될 수 있고, 방부제도 없으니까요. 이를 예방하려면 내용물을 별도의 밀폐용기에 옮겨 보관해야 합니다.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하고요.
무적의 식품 보관 방법인 통조림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캔이 부풀어오른 통조림은 폐기해야 합니다. 내용물이 부식되며 발생한 가스가 차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통조림을 섣불리 연다면 로켓처럼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유튜브에서 이런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캔이 찌그러져 있는 통조림도 위험합니다. 충격을 받으면서 용접에 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으로 세균이 침투했다면 내용물이 서서히 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통조림은 우리 생각보다 더 안전합니다. 통조림을 둘러싼 오해 중 상당수는 "그럴 수도 있다" 정도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공포 마케팅'에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도 드네요. 통조림은 지금도 더 안전해지고 있습니다. 뚜껑을 날카롭지 않게 만들어 따다가 다칠 위험을 낮춘 제품도 많죠. 이런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우리는 편안하게 먹고 싶은 통조림을 먹으면 됩니다. 과한 걱정이 오히려 건강을 더 해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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