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5만 개 시대를 연 편의점 업계의 경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시장이 성숙기에 다다른 만큼 더 이상의 출점 경쟁은 돌파구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결국 누가 얼마나 '차별화'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하지만 각 업체별 차별화 방식은 다르다. 탄탄한 오프라인 인프라를 갖춘 CU와 GS25는 상품과 서비스 강화를 통한 플랫폼화를 꿈꾸고 있다. 반면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은 공간 혁신에 나서고 있다.
◇ 경쟁 격화에 수익성 빨간불…"차별화가 살 길"
지난해 편의점 주요 기업 5개사의 전국 점포 수는 4만 7884개였다. 지난해보다 3000개 가량 늘었다. 점포 수 1위는 1만 4923개를 기록한 CU였다. 지난해 1위 자리를 GS25에 내준 CU는 1년 동안 1046개 점포를 늘려 다시 점포 수 1위 자리를 탈환했다. GS25는 같은 기간 770개 늘어난 1만 4688개 점포수를 기록했다. 세븐일레븐(1만 501개), 이마트24(5165)개, 미니스톱(2607개)이 그 뒤를 이었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군소 매장을 포함하면 지난해 전체 점포 수는 5만 개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의점의 성장세는 최근 급격히 가팔라지고 있다. 1989년 국내 첫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잠실점이 등장한 이후 전국 3만 개 점포를 달성하기까지는 약 25년이 걸렸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1인 가구가 급증하며 골목 시장이 활성화됐다. 같은 시기 치킨집, 카페 등 전통적 창업 아이템들은 시장 포화로 하락세를 겪었다. 편의점은 소자본 창업 모델로 주목받으며 틈새를 채웠다. 그 결과 5년 만에 2만 개 점포 순증을 기록하며 전성시대를 맞았다.
급성장은 부작용을 낳았다. 매장 수가 늘자 점포당 수익성이 하락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유통업체 매출 동향 발표에 따르면 편의점의 점포당 매출액은 지난 한 해 내내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도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1월 편의점의 점포당 매출은 4610만 원, 2월은 4291만 원이었다.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49만 원, 154만 원이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출점 경쟁을 통한 급성장이 더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앞다퉈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편의점은 가맹점 영업이 이어져야만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가맹점주는 수입이 줄어들면 언제든 다른 브랜드를 선택하거나 사업을 접을 수 있다. 특히 최근의 출점 경쟁은 신규 출점 외에도 타 브랜드의 사업장을 빼앗는 방식으로도 전개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약 4000개 점포의 계약이 끝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지키고 빼앗기 위한 쟁탈전이 예상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 '남들과 달라 많이 벌 수 있다'가 가장 큰 무기가 된다는 이야기다.
◇ 같은 차별화, 다른 선택…이유는?
하지만 차별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CU와 GS25는 플랫폼으로의 변신에 나서고 있다. 택배는 물론 세탁소, 배달까지 편의점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GS25는 배달 주문 상품 1+1 행사를 진행하며 시장 키우기에 집중하고 있다. 취급하는 상품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CU는 최근 LG헬로비전과 손잡고 30분 이내에 알뜰폰 유심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론칭했다. GS25는 젝시믹스와 MOU를 체결하고 스포츠레깅스 제품을 판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의 차별화 전략은 이들과 다르다. 이들 업체는 '공간'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식품 전문 점포 '푸드드림' 플랫폼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폐기 상품을 온라인으로 할인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라스트오더'도 확대하고 있다.
이마트24는 주류·애플 제품 전문 매장, 스무디킹·오피스디포 숍인숍 등 차별화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정액제 가맹비, 24시간 영업 여부 선택 등 점주를 위한 정책도 도입했다. 미니스톱은 지난해 정육 판매 자판기를 시범 운영한 데 이어 점포 내 패스트푸드 브랜드 '수퍼바이츠'를 론칭했다. 수퍼바이츠는 초기 호응에 힘입어 올해 가맹사업으로까지 확장됐다.
업계에서는 업체별로 차별화 전략이 다른 것은 인프라 격차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총 점포 수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CU와 GS25는 전국 점포를 엔드라인 물류 플랫폼으로 활용 가능하다. 물류 서비스 도입으로 부가 수익을 발생시켜 점포 수익성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마트24와 미니스톱은 점포 수가 적다. 세븐일레븐은 우량 점포가 관광지 위주여서 골목 상권 공략에 다소 불리하다. 따라서 섣불리 유사한 서비스를 강화하다가는 운영비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 결국 점포를 차별화 포인트로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점포에 집중하는 전략이 가맹점 유치에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류 플랫폼으로서의 가치가 두드러지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편의점 점포의 가치는 '집객'이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는 '체험'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현대서울은 기존 백화점과 다른 쇼핑 경험을 내세워 개점 첫 달 매출 1000억 원을 넘겼다. 체험형 매장인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는 롯데하이마트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편의점 시장에서도 이런 체험형 점포 모델이 나온다면 충분히 가맹점주를 유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시장 성장은 이어지겠지만, 점포 수가 포화 상태인 만큼 출점을 통한 고도 성장은 어렵다. 결국 점포 빼앗기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며 "차별화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고객과 점주에게 더욱 큰 소구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브랜드가 앞으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