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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쿠팡 것?

  • 2021.05.01(토) 11:00

[週刊流通]김범석 의장 '동일인' 지정 제외 논란
명백한 쿠팡 지배자임에도 제외…업계 등 '반발'

[週刊流通](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 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週刊流通]을 보시면 한 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 피하고 싶은 '동일인' 지정

쿠팡이 또 이슈의 중심에 섰습니다. 뉴욕 증시 상장 이후 쿠팡은 그야말로 온 국민의 관심사입니다. 최근 유통업계는 물론 증권가에서도 늘 회자되는 곳이 바로 쿠팡입니다. 그랬던 쿠팡이 이번에는 '총수' 이슈로 들썩였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심 끝에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서입니다. 이게 왜 이슈가 되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흔히들 재벌이라 부르는 대기업에는 대부분 총수가 있습니다. 오너로 불리죠.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회장 등이 흔히 말하는 총수입니다. 대기업의 대표죠. 대기업의 오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집니다. 그 큰 기업의 의사결정은 물론 각종 사업의 결정, 수 조원에 달하는 자금의 흐름까지 모두 총수가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총수들의 움직임은 늘 세간의 관심의 대상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정부가 묶어 놓은 대기업 집단에 속해있다는 점입니다. 대기업 집단이 뭐냐고요?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해서 발표합니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시·신고 의무,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등이 적용됩니다. 대기업의 경제적 집중을 억제하고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 의장을 '동일인'에서 제외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한마디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너희들 조심해. 우리가 늘 지켜보고 있을 거야"라는 시그널을 확실하게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됩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불공정한 행위를 하면 바로 규제에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해당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닐 겁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규제라는 철퇴를 맞으니까요.

사업이 잘 돼서 자산 총액이 5조 원을 넘어서면 지정 대상이 되는 터라 기업들 입장에서는 덩치가 커진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고 수긍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탐탁지 않아 합니다. 오래전부터 대기업이었던 곳은 이래도 저래도 늘 규제의 대상이었지만, 급속도로 사세가 커진 기업들은 그동안은 받지 않아도 됐던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받아야 하니 좋을 리 만무합니다.

특히 기업들이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는 것을 꺼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동일인(총수)' 지정 때문입니다.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상 그룹 총수를 뜻합니다. 기업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행사 여부를 기준으로 결정되죠.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배우자가 공시 의무 대상에 포함됩니다. 해당 기업에게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분명 김범석 의장 회산데…"

자, 이제 쿠팡으로 돌아가 볼까요? 쿠팡의 자산총액은 지난해 3조 1000억 원에서 올해 5조 8000억 원 규모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당연히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 대상입니다. 쿠팡이 대기업 집단에 지정될 것이라는 사설은 삼척동자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눈으로 딱 보이는 숫자가 기준을 충족했으니 쿠팡으로서는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죠. 그리고 실제로 쿠팡은 대기업 집단으로 신규 편입됐습니다.

문제는 총수 지정입니다. 이게 참 애매하거든요. 쿠팡의 창업주인 김범석 의장이 가진 조건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기업의 총수는 곧 오너였던 만큼 지정 과정은 매우 심플했습니다. "네가 주인이니까 네가 총수야"라고 하면 끝이었습니다. 기업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요. 총수는 그 기업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오너가 지정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심지어 롯데의 경우 공정위에서 총수를 신격호 명예회장에서 신동빈 회장으로 변경, 지정한 것을 두고 신동빈 회장이 명실상부한 롯데의 대표자가 됐다고 발표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김범석 의장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창업주인 것은 맞는데 국적이 미국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외국인'입니다. 소위 말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한 일이 없습니다. 사례가 없는 거죠.

쿠팡 본사/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공정위는 골머리를 앓습니다. 내부적으로 많은 스터디와 의논을 거쳤죠. 그 사이 공정위 밖에서는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 아니다로 시끄러웠습니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오래전부터 이 사안에 대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달이 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공정위가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쿠팡이 상당한 공을 들여 물밑 작업을 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쿠팡은 작년부터 부쩍 관(官)계와 법조계 사람들을 대거 영입해 진용을 갖췄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김 의장의 총수 지정을 막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해왔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공정위는 결국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습니다. 쿠팡의 의도대로 된 겁니다. 결과론적이지만 쿠팡이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준비했던 것이 빛을 발한 셈입니다.

공정위는 미국인인 김 의장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현행 경제력집중 억제 시책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현재로선 일감 몰아주기나 사익 편취 가능성은 없다고 봤습니다. 쿠팡이 계열사들 지분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국내에 김 의장 친족이 지배하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 공정위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더불어 비슷한 사례도 참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공정위는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경우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왔습니다. 에쓰오일과 한국GM이 대표적입니다. 에쓰오일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인 AOC가, 한국GM은 미국 GM이 최대주주입니다. 그래서 두 회사의 동일인은 AOC와 미국 GM입니다. 즉 개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겁니다.

◇ 김범석 의장, '최후의 승자'가 되다

분명 쿠팡은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국내에서 창업했는데 외국계 회사라뇨?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쿠팡의 지배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쿠팡은 현재 미국 법인인 쿠팡Inc가 한국의 쿠팡㈜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뉴욕 시장에 상장한 것도 쿠팡㈜가 아닌, 쿠팡Inc입니다. 그렇다면 쿠팡Inc는 누가 지배하고 있을까요?

김 의장은 쿠팡Inc의 지분 10.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요 주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복병이 있습니다. 바로 '차등 의결권'입니다. 차등 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권한입니다. 김 의장은 주당 29배 차등 의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 의장이 가진 실질적 의결권은 76.7%입니다. 쿠팡이 김 의장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분명 쿠팡은 김 의장이 확실한 지배력을 갖고 있는데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을 김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으로 지정했습니다. 경쟁사와 업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쿠팡이 시장 지배력을 점점 키워가고 있는 마당에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에서 제외됐으니 뿔이 날만도 합니다.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에서 제외되면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방지 제재의 최종 책임자로 공정위 제출 지정 자료 등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됐습니다.

김범석 쿠팡 의장/사진제공=쿠팡

사실 김 의장 입장에서는 많은 부담을 덜게 됐습니다. 그동안 김 의장은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른 바가 있습니다. 수조 원대의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 회사 명의로 수십억 원대의 주상복합을 빌려 사용했다거나,  독단적인 의사결정 등이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쿠팡 라이더 문제 등 다양한 부문에서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인 지정에서 제외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일일이 공식적으로 답할 의무가 없어지게 된 겁니다. 이 모든 부담을 이젠 쿠팡이 지게 됐지만 창업자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쿠팡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업계 등에서는 공정위를 향해 '외국인 특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2017년 이해진 네이버 GIO 총수 지정 때와는 다른 결론을 내린 것도 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향후 쿠팡에 대한 불공정행위 감시가 어려워진다는 점도 반발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지정에 국적에 대한 규정이 없고 김 의장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에도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한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공정위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관련 제도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어쨌거나 김 의장이 됐습니다.

이번 사태는 쿠팡이 성장하는 데 있어 겪어야 할 과정일 겁니다. 더불어 쿠팡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쿠팡의 성장에는 소비자가 있었습니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순간 쿠팡을 끝입니다. 덩치가 커지고 주목을 받을수록 소비자들에게 쿠팡의 진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신들의 선택이,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면 투명성과 자정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정말 원하는 것은 쿠팡의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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