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의 레드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자회사 'CJ바이오사이언스'가 최근 공식 출범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인수한 마이크로바이옴 전문 기업 '천랩'의 사명을 바꾸고 바이오 사업을 본격화한 건데요. CJ바이오사이언스는 '세계 1위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CJ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8년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매각하고 신약개발에서 손을 뗀 지 3년 만의 재도전입니다. 당시 CJ그룹은 CJ헬스케어 매각 이유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과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재원 확보"라고 설명했는데요. 업계에선 재무구조 안정화에 성공한 CJ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다시 제약바이오 사업을 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 소비자에게 CJ제일제당은 비비고, 햇반 등 식품 기업으로 친숙합니다. 가공하지 않은 1차식품에 바이오 기술을 융합한 그린 바이오(농업·식품·해양)인데요. 그린 바이오는 생명공학을 기반으로 식물종자, 첨가물 등을 생산하는 바이오 사업 분야입니다.
현재 CJ제일제당의 그린 바이오 사업은 매출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 그린 바이오 매출은 지난 2016년 1조8016억원에서 2020년 2조9817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조694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요.
이처럼 그린 바이오 사업이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새 역량을 찾아 나선 것이란 분석입니다. 식품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다시 신약개발에 투자,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구상인데요. CJ바이오사이언스는 출범식에서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분야를 넘어 바이오 신약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명확히 했습니다.
특히 이번 바이오 사업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바이오 사업이라는 점에서 과거 제약바이오 사업과는 다릅니다. 기존 CJ헬스케어의 레드 바이오 사업은 복제의약품(제네릭)과 화학 합성의약품 중심이었습니다. 반면 CJ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천랩'은 마이크로바이옴 헬스케어 기업입니다. 미생물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천종식 대표가 지난 2009년 설립했고 사명만 바뀌었을 뿐 천 대표가 계속 이끌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내 세균, 바이러스 등 각종 미생물 생태계입니다. 건선, 역류성식도염, 대장염, 심혈관계 질환 등 여러 질환과 장내 미생물 간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약 물질로도 주목받고 있죠.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성장 가능성도 매우 높은 분야로 꼽히고요.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전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은 오는 2023년 1086억8000만달러(약 13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CJ바이오사이언스가 제시한 마이크로바이옴 사업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클라우드 △유전체 기반 감염진단 △마이크로바이옴 헬스케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입니다. 치료제·신약 개발의 경우 현재 CJ바이오사이언스가 독자 발굴한 신종 균주 'CLCC1'를 활용해 간암, 대장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치료제를 개발 중이고요.
다만 CJ바이오사이언스의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CJ바이오사이언스에 따르면 면역항암, 장질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전임상단계에 있습니다. 간질환이나 치매 등과 같은 신경질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후보물질을 탐색 중입니다. 보통 신약개발에 약 1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약개발 성과를 내기엔 시간이 꽤 필요한 셈입니다.
업계에선 CJ그룹이 CJ바이오사이언스의 신약개발을 위해 사활을 걸 것으로 예상합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CJ바이오사이언스의 매출과 영업손실은 각각 53억원, 8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약 94%에 달합니다. 앞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23 중기비전'을 발표하면서 3년간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약속한 만큼 신약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출범식과 함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 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2025년까지 10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하고 이 중 2개를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하겠다는 목표입니다. 또 2~3년내로 면역항암·자가면역질환 치료용 신약의 미국 임상2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고요.
천종식 CJ바이오사이언스 신임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바이오 플랫폼 기술이 면역 항암제나 mRNA 백신과 같은 새로운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라며 "글로벌 No.1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CJ제일제당이 '비비고' 기업이라는 친근한 이미지에 더해 신약개발 전문 기업으로서 재각인될 시점에 관심이 모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