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믹스커피에서 캡슐커피 머신까지
'커피 공화국'이 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커피라고 하면 동결건조 원두에 프림을 탄 믹스커피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원두커피 메이커를 이용해 집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마시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에게 커피란 '맥심'을 의미했다. 동서식품의 전성기였다.
시장이 '아메리카노' 중심으로 흘러간 이후에도 동서식품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바로 '카누' 덕분이다. 믹스커피처럼 간편하면서도 아메리카노처럼 깔끔한 맛을 내는 카누는 곧 맥심 모카골드와 더불어 동서식품의 양대 축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가정용 커피 시장이 또 한 번 변화를 겪고 있다. 바로 캡슐커피 머신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홈카페 열풍은 캡슐커피 머신의 대중화를 불러왔다. 믹스커피만큼 편리하면서도 커피전문점에 버금가는 품질의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실제 2011년 1% 남짓이었던 가정용 캡슐 머신 보급률은 지난해 10%까지 급성장했다. 이 기간 믹스커피 시장 규모는 20% 가까이 줄었다. 동서식품이 '카누 캡슐커피 머신'을 내놓은 이유다.
국내 캡슐커피 머신 시장은 네슬레의 네스프레소가 70%대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뒤이어 일리, 샤오미, 라바짜 등이 틈새 시장을 노리는 모양새다. 동서식품이 '카누'의 이름을 달고 내놓은 신제품은 이 글로벌 브랜드들의 각축전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동서식품 '카누 바리스타 브리즈'를 직접 구매해 사용해 보고 네스프레소의 신형 머신과 비교해 봤다.
겉모습은 평범·가성비는 애매
카누 캡슐커피 머신은 중국의 캡슐커피 머신 전문 제조사인 시노 테크놀로지(cino tech)가 제조했다. 저가형인 브리즈와 고급형인 어반으로 나뉘어 출시됐는데, 디자인과 컬러, 물통 크기(브리즈 900㎖, 어반 1200㎖)만 다를 뿐 머신의 스펙과 기능은 전부 동일하다.
가격은 브리즈가 약 17만원, 어반이 약 20만원이지만 실제로는 각각 11만원대, 14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슬소생]에서는 보급형인 브리즈를 구매해 이용했다.
업계 1위인 네스프레소의 신형 모델인 버츄오가 14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가격 경쟁력은 낮은 편이다. 다만 캡슐은 개당 790원으로 네스프레소 캡슐에 비해 10%가량 저렴하다.
디자인은 깔끔한 편이지만 전면에 카누 로고가 프린팅된 것을 제외하면 카누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론칭 당시부터 꾸준히 '내 방 안의 카페'라는 콘셉트를 유지해 왔던 만큼 디자인부터 한 눈에 카누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모습이었으면 어땠을까. 브리즈의 경우 재질과 기기 촉감이 다소 저렴한 플라스틱 느낌인 것도 단점이다.
아메리카노에 집중
카누 캡슐커피 머신은 아메리카노에 특화된 캡슐 머신이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추출할 수 있으며 아메리카노의 물 양을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아아 버튼'이 따로 있는 것도 '한국인 맞춤형'이다.
뜨거운 물 추가 버튼을 따로 할당한 것도 눈에 띈다. 물을 더 넣고 싶지만 정수기가 없는 경우 물을 따로 끓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버튼 한 번이면 뜨거운 물을 내려줘 원하는 농도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캡슐은 원두량 9.5g으로 네스프레소 버츄오(8g)보다 많은 양을 투입했다. 특허가 등록된 '트라이앵글 탬핑' 방식으로 원두를 탬핑해 균일한 추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캡슐 종류는 총 8가지다. 네스프레소 호환용 캡슐을 따로 출시했지만 카누 머신에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그래서, 맛은요
캡슐커피 머신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라면 카누나 스타벅스 비아 같은 인스턴트 커피로 만족하지 못하는 '마니아'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커피 맛에 예민하고 다양한 풍미의 커피를 즐긴다.
이 점에서 카누 캡슐커피 머신은 아쉬움이 많다. 8종의 캡슐을 제공하지만 차이가 크지 않다. 대체로 산미나 향이 강하지 않아 특색이 없다. 다양한 개성의 원두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인 캡슐커피의 특징이 희석되는 부분이다.
카누 바리스타 브리즈(젠틀 스카이 캡슐)로 내린 아메리카노와 네스프레소 버츄오 넥스트(멕시코 캡슐)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함께 비교해 봤다. 카누 캡슐커피 머신은 기본 설정으로 아메리카노를 추출하면 210㎖가 나오는데 230㎖를 추출하는 버츄오 넥스트의 멕시코 캡슐보다 연하게 추출됐다. 평소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연하게'를 주문하는 사람들이라면 적당하다고 느낄 것 같다.
크레마는 커피 위에 살짝 덮히는 정도로 생겼다가 사라진다. 크레마를 과할 정도로 만들어내는 네스프레소 버츄오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전반적으로 '커피 초심자'를 겨냥한 머신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캡슐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개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무난한 맛을 지향했다. 네스프레소나 일리 등 기존 캡슐커피 머신 이용자보다는 '카누'를 좋아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머신이다.
기존 캡슐커피 머신 이용자라면 굳이 기기를 교체하거나 교체 시 고려할 매력은 낮다. 도전자 입장인 만큼, 머신 가격을 낮춰 보급률을 높인 후 캡슐 종류를 늘려가는 식으로 시장을 공략했다면 어땠을까.
*본 리뷰는 기자가 직접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