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봄이 오면 라면업계는 여름 비빔면 준비로 분주해진다. 비빔면의 최대 성수기는 더위가 한창인 6~8월이다. 이 때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3~4월에 신제품을 내놓고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이 나왔다는 각인을 해 줘야 한다. 실제 대부분의 신제품 비빔면은 3~4월에 출시가 집중된다.
사실 신제품 비빔면은 맛의 기준이 명확하다. 40년 넘게 1위를 지키고 있는 팔도비빔면이 기준점이 된다. 팔도비빔면과 차이를 만들면서도 지나치게 이질적이지 않은 맛을 구현하는 게 신제품 비빔면들의 목표다.
올해에도 주요 라면 기업들이 신제품 비빔면을 내놨다. 올해 대형 신제품을 선보이지 않은 곳은 업계 1위 팔도비빔면을 보유한 팔도와 3위 진비빔면을 갖고 있는 오뚜기 정도다. 나머지 기업들은 잇따라 신제품을 내놓고 대규모 판촉 행사에 나서고 있다.
2위 농심은 업계 2위 브랜드로 자리잡은 '배홍동'의 면을 건면으로 바꾼 '배홍동쫄쫄면'을 내놨다. 비빔면 시장에서는 유난히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삼양식품은 '4과비빔면'을 새로 선보였다. '더미식' 브랜드로 라면 시장에 진출한 하림산업도 '더미식비빔면'을 통해 비빔면 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이번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는 신제품 비빔면 3종을 시식해 보고 어떤 제품이 올해 비빔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예측해 보기로 했다.
든든한 형 업은 '배홍동쫄쫄면'
배홍동쫄쫄면은 업계 2위를 확고히 한 배홍동의 동생 격인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신제품 비빔면이 3~4월에 출시되는 데 비해 배홍동쫄쫄면은 2월 말에 출시, 경쟁 브랜드들보다 한 발 앞서 마트 매대를 점령했다. 벌써 누적 매출이 45억원에 달한다. 배홍동(55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배홍동쫄쫄면은 지난 2년간 호평받은 배홍동의 소스에 면을 쫄깃한 건면으로 바꿔 식감을 강조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건면인 만큼 칼로리도 낮은 편. 일반적으로 비빔면류는 칼로리가 1봉에 500㎉를 훌쩍 넘지만 배홍동쫄쫄면은 445㎉다. 여기에 기존 배홍동에는 없던 튀김 토핑까지 더했다.
조리 시 다른 비빔면들보다 1분 이상 많은 4분30초간 면을 삶도록 권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식감이 단단하게 느껴져서 5분 정도 삶아야 먹기 좋은 식감이 됐다. 소스는 단맛보다는 새콤한 맛이 더 강한 배홍동의 맛이다. 기존 배홍동의 경우 소스 맛이 강한 데 비해 면이 부드러워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쫄쫄면은 면이 질겨지면서 소스와 궁합이 잘 맞아 '원조'보다 낫다고 느꼈다.
농심이 '넉넉한 소스'를 강조한 것처럼 소스 양이 많아 곁들임 채소나 삶은 계란 등을 같이 비벼도 싱거워지지 않는 건 장점이다. 농심 역시 오이나 데친 콩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다만 질기거나 딱딱한 면을 선호하지 않는, 기존 팔도비빔면을 즐기는 소비자라면 점수를 대폭 깎을 것으로 보인다.
칼 갈고 나왔다 '더미식비빔면'
하림산업은 '더미식장인라면'으로 라면 시장에 진출한 뒤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나오는 제품마다 고가 논란에 휩싸였고 판매량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후 몇 개의 라면을 더 내놨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더미식비빔면을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이유다.
더미식비빔면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로 반죽한 면'이다. 비빔면의 경우 라면처럼 스프의 간을 면발이 흡수하지 않고 겉에 맴돈다. 비빔면류를 먹다 보면 가끔 면과 소스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육수로 면을 반죽한 뒤 튀겼다. 더 고소하고 쫄깃한 면발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더미식비빔면의 면발은 기존 비빔면들보다 월등히 쫄깃한 식감을 냈다. 배홍동 쫄쫄면 수준은 아니지만 적당히 탄력이 있고 씹는 맛이 좋다. 10가지 과일과 채소를 넣은 소스는 신맛보다는 달콤한 맛을 중심에 둬 부담스럽지 않게 넘어갔다.
불닭볶음면의 등장 이후 라면이 전반적으로 매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더미식비빔면의 경우 많이 맵지 않고 살짝 칼칼한 느낌만 남아 단 맛의 여운을 끊어 줬다. 전반적으로 소스 밸런스가 아주 좋다는 느낌. 이날 맛본 3개 제품 중 가장 맛있다고 느낀 제품이다. 그러면서도 나트륨 함량은 1270㎎에 불과하다. 주요 비빔면 브랜드 중 가장 낮다.
4가지 과일 들었다더니…4과비빔면
불닭볶음면으로 '국물 없는 라면' 시장을 제패한 삼양식품이지만 차가운 비빔면 시장에서는 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갓비빔, 삼양비빔면, 튀김쫄면, 비빔밀면 등 신제품을 꾸준히 선보였지만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단종 수순을 밟았다. 1991년 출시된 열무비빔면이 개성있는 맛으로 마니아층을 일부 만든 정도다. 올해엔 사과와 매실, 배, 파인애플을 넣고 숙성한 '4과 비빔면'으로 다시 한 번 여름 비빔면 시장 공략에 나섰다.
4과비빔면은 신제품 3종 중 가장 전형적인 비빔면의 모습이다. 면은 팔도 제품만큼 얇아 후룩후룩 넘어간다. 소스도 점점 진해지고 걸쭉해지는 시장 경향과 달리 묽은 편이다. 그만큼 잘 비벼진다는 건 장점. 비빈 후의 모습은 3종 중 가장 붉어 다른 두 제품보다 매울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실제로 4과비빔면은 '불닭볶음면의 나라' 삼양식품답게 3개 신제품 중 가장 매운 맛을 자랑했다. 이른바 '맵찔이'의 기준으로는 먹고 나면 입이 얼얼할 정도다. 전반적으로는 고추장 맛이 강한 일반적인 타입의 비빔면 소스다. 팔도비빔면을 좋아하지만 맛이 조금 싱겁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선택할 수 있을 것.
개인적으로는 4과비빔면이라는 네이밍처럼 과일맛이 더 풍성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소스에 4가지 과일이 들어 있어 4과비빔면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맛에서 이를 느끼기엔 함유량이 미미하다. 사과가 3.3% 들어 있어 체면치레를 했고 매실이 0.3%, 배가 0.08% 들어 있다. 파인애플 함유량은 0.00008%다. 경쟁 제품인 더미식 비빔면의 과일 함유량은 매실 1.7%, 배 1.2%, 사과 0.9%, 자두 0.5%다.
*본 리뷰는 기자가 일부 제품을 제공받았고 일부 제품은 매장에서 구입해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