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이 스팸을 사용하는 식당과 다른 저가 캔햄류를 사용하는 식당을 구분하기 위해 도입한 '스팸 인증제'가 도입 2년여 만에 표류하고 있다. 스팸과 런천미트를 둘러싼 논란이 단기 이슈로 끝나면서 소비자·식당의 관심도가 떨어진 데다 과도한 인증 요구가 소상공인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겹쳤기 때문이다.
스팸 인증제 기억나니
스팸 인증제의 필요성이 대두된 건 지난 2021년이다. 한 식당에서 판매하는 '스팸덮밥' 메뉴에 CJ제일제당의 캔햄인 스팸이 아닌 저가형 런천미트를 이용했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다. SNS에서는 '스팸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스팸이 아닌 다른 햄을 사용하면 스팸이라 부를 수 없다'는 주장과 '캔햄을 통상 스팸이라 부르니 이 정도는 관용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 부딪혔다.
비슷한 품질의 제품이 브랜드명만 달라 문제가 된 게 아니라 런천미트의 경우 밀가루와 계육 등을 섞어 단가를 낮춘 제품이라는 데서 이슈가 확산했다. 실제 스팸의 경우 돈육 90% 이상을 사용했고 가격도 340g 캔 기준 3000~4000원대로 고가다. 반면 런천미트는 돈육 함량이 낮고 계육과 전분 등을 다량 이용했다. 가격도 같은 용량이 1000원대로 저렴하다.
이에 CJ제일제당은 같은해 4월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팸 사용 업체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스팸 인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매장과 메뉴판에 스팸을 사용하고 있다는 스티커를 배포해 소비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이 '스팸 인증제'를 도입한 건 연매출 4000억원, 시장 점유율 50%의 스팸 브랜드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소비자가 런천미트를 사용한 '스팸 덮밥'을 먹고 불만족하면 결국 스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용두사미
한 차례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였지만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현재 스팸 인증제에 가입한 식당 수는 약 2600여개다. 이 중 800개 이상의 점포를 보유한 한솥도시락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외 가입자도 스쿨푸드, 고피자 등 상대적으로 스팸 인증제 가입 필요성이 높고 협력이 수월한 프랜차이즈 업소에 집중돼 있다.
높은 화제성을 보였던 스팸 인증제가 '용두사미'가 된 건 업계에서 스팸 이슈가 빠르게 휘발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슈 발생 직후 SNS를 중심으로 스팸과 런천미트, 다른 브랜드들의 프리미엄 캔햄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며 '정품 스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CJ제일제당이 스팸 인증제를 시작한 5월에는 이미 '죽은 이슈'가 됐단 분석이다.
스팸이 주로 가정에서 소비되는 제품이라는 점은 스팸 인증제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식는 계기가 됐다. 스팸덮밥은 짜장면, 돈까스, 제육덮밥 등 인기 외식 메뉴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는 메뉴다. 식당에서의 소비량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스팸은 가정에서 소비된다. 외식 부문에 포커스를 맞춘 인증제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
CJ제일제당 입장에서도 스팸 인증제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자칫하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소상공인에게 고가의 자사 제품 사용을 강요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 측도 스팸 인증제에 대해 "현재 운영방식 개선 등 전반적인 재정비를 위해 신청을 임시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