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향후 기업이 어떤 전략을 펼칠지 엿볼 수 있는 '포석'과도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신세계 인사는 재미있는 요소가 참 많았습니다. 인사 시기가 워낙 빨라서 한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이마트 오프라인 유통 사업군이 하나로 묶인 것도 관심이었죠. 한채양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 '원(One) 대표 체제'가 탄생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한 대표의 이마트24 대표 겸직입니다. 앞서 이번 신세계 인사는 과거 롯데 인사를 참고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요. 지난해 롯데마트 강성현 대표는 롯데슈퍼 대표까지 맡으며 마트·슈퍼 소싱 등 업무를 통합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트와 슈퍼에 한정됐고요.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은 개별 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덩치가 워낙 큰 데다가 경쟁이 치열한 편의점 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를 비춰보면 한 대표에게 3곳의 수장을 맡긴 이마트의 움직임은 다소 의아합니다. 얼핏 봐도 대형마트와 슈퍼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일단 취급 상품군이 비슷하고요. 타깃 고객층도 같습니다. 규모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죠. 이점을 이용해 상품을 공동 소싱하면 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 편의점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매입 원가 기준부터 MD(상품기획) 구성까지 차이점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를 두고 세간에선 여러 추측이 나왔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마트24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이마트24의 마뜩잖은 성장세입니다. 현재 이마트24는 위기입니다. CU, GS25, 세븐일레븐에 이어 만년 4위를 기록 중입니다. 특히 3위 업체였던 세븐일레븐이 미니스톱 인수에 성공하면서 위기감이 더 커졌습니다. 현재 매장 수 차이가 두 배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재무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지난해 신세계 그룹에 편입된지 9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이전까지 줄곧 적자였습니다. 주로 마케팅, 판매관리비 등 증가가 원인이었습니다. 빠르게 매장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컸습니다. 경쟁사 대비 큰 차이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부진의 이유로 꼽힙니다. 지난 2분기에도 매출 5744억원, 영업이익 34억원을 거뒀죠.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7.2%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9억원 감소했습니다.
이마트는 통합운영을 통해 이마트24의 성장세를 이끌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예컨대 공동 마케팅 등은 이마트24의 재무 부담을 낮춰줄 수 있습니다. 통합 PL(자체브랜드) 상품으로 이마트24의 차별성을 확보하려는 전략도 있을 겁니다. 예컨대 노브랜드 상품이 이마트24에서 팔리게 되면 꽤 인기를 끌 수도 있겠죠. 앞서 신세계는 이를 위해 이번 인사에서 황운기 이마트 상품본부장을 이마트 3사 통합본부장에 선임했습니다.
다음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이마트24를 통한 DT(디지털전환), 바로 퀵커머스(근거리 배송)입니다. 그간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는 각자 따로 퀵커머스 전략을 펼쳐왔습니다. 이마트는 '쓱고우', 이마트에브리데이는 'e마일', 이마트24는 별도 앱을 통해 각개전투 중이죠. 이 때문에 서로 별도의 MFC(도심형 물류센터)를 만드는 등 중복 투자가 많았고 신세계의 퀵커머스 성장을 막는 걸림돌로 평가됐습니다.
퀵커머스에선 앞으로 GS리테일의 모델을 참고할 가능성이 큽니다. 슈퍼와 편의점을 활용한 대표 시너지 사례로 꼽히니까요. GS리테일은 현재 GS25, GS더프레시를 묶어 퀵커머스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 중이죠. 이들 매장을 MFC로 활용하며 서비스 권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GS더프레시의 퀵커머스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331.1%를 기록했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도 전년 동기 대비 89.7% 증가했죠.
이외에도 이마트24는 활용 가치가 많습니다. 현재 편의점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 중입니다. 택배는 물론 전기차 충전 등 마트·슈퍼에서 할 수 없는 기능이 늘고 있습니다. 무인점포, 드론배송 등 신기술도 적용 중입니다. 향후 신세계 그룹의 오프라인 전략에 대한 밑그림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퀵커머스, 체험형 매장 등 오프라인을 활용한 전략은 경쟁자인 쿠팡을 따돌리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무기로 꼽힙니다.
이처럼 신세계는 이번 인사에서 큰 그림을 그렸던 겁니다. 물론 통합이 능사는 아닐 겁니다. 이미 각 계열사가 따로 사업을 진행해 온 것이 수십 년입니다. 저마다 이해 관계가 다를 거고요.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공동 대표가 생겼다고 한순간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죠. 통합에 따른 단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한채양 대표가 이마트 3형제를 잘 키워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함께 지켜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