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 '설화수'가 올리브영의 온라인몰에 입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올리브영은 지난해부터 온라인몰 내에서 프리미엄 화장품 전문관 '럭스에디트'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지난달 말 LG생활건강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더후'에 이어 이번에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까지 럭스에디트에 입점시킨 겁니다.
이전에는 주로 백화점과 면세점 등에서 판매되던 럭셔리 브랜드들이 올리브영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올리브영의 위상이 달라졌다는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과 올리브영은 화장품 소매 시장에서 오랜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제품 공급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죠. 여러모로 설화수의 올리브영 입점이 눈에 띄는 이유입니다.
로드숍 맞붙은 아모레·올리브영
2000년대 들어 '미샤'가 등장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은 가두점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가두점이라는 의미의 단어 '로드숍'이 단일 화장품 브랜드만 판매하는 매장을 뜻하는 용어로 대체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아모레퍼시픽도 2008년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들만 판매하는 '아리따움'을 론칭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4년부터 자사 브랜드와 타사 브랜드를 함께 판매하는 '휴플레이스'를 운영했는데, 아리따움에서는 오직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만 판매한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사업모델도 오직 아모레퍼시픽에서만 제품을 공급받는 형태의 가맹사업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100% 자사 제품으로만 한 매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화장품 구색이 많아야 합니다. 지금이야 이런 형태의 사업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아모레퍼시픽이 1위 화장품 기업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이었죠.
올리브영은 1999년 헬스·뷰티용품 전문점, 즉 지금의 H&B스토어를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거의 10년간 이렇다할 성장세를 보이진 못했는데요. 하지만 2008년 매장 수가 50개를 넘으면서 흑자전환에 성공하더니 조금씩 사업을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모레퍼시픽도 자사 제품을 올리브영에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아모레퍼시픽은 올리브영 납품 중단을 결정합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 경쟁사인 LG생활건강이 2009년 '더페이스샵'을 인수하면서 로드숍 매장 수에서 아모레퍼시픽을 넘어선 것을 그 이유로 봤습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타사 제품과 자사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뷰티플렉스'를 운영 중이었습니다. 아리따움보다 매장수가 조금 적었죠. 하지만 더페이스샵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매장 수 면에서 아모레퍼시픽을 넘어섰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서는 자사 로드숍 아리따움을 더욱 키워야하는 만큼 올리브영에서 제품을 빼기로 했다는 겁니다.
또 올리브영이 당시 가맹체제를 도입하려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직영점만 운영하던 올리브영이 가맹사업을 시작하면 아리따움과의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화장품 가게가 늘어날 수록 아모레퍼시픽 가맹점주들에게는 악재입니다. 이 때문에 아모레퍼시픽은 당시 아리따움 가맹점주들에게 주력 브랜드 제품들을 우선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모레퍼시픽이 올리브영에 대한 화장품 납품을 전면 중단하자, 올리브영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이 올리브영에 납품하는 제품은 화장품 중 약 15%, 전체 상품에서는 약 8%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올리브영 완승
하지만 올리브영의 위기는 잠시였습니다. 올리브영은 이때부터 아모레퍼시픽을 대체할 다른 브랜드들을 잇따라 발굴하기 시작합니다. 해외 화장품 브랜드, 더마 브랜드 등 다른 로드숍에서 찾기 힘든 브랜드를 대거 선보였습니다. 2011년에는 가맹사업을 시작했고 매장수도 크게 늘렸습니다. 2010년 당시 70여 개였던 올리브영의 매장 수는 5년 후인 2015년 400개를 넘어섰습니다.
결국 5년만에 아모레퍼시픽이 다시 올리브영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2015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이 올리브영에 마몽드, '베리떼' 등 일부 화장품 제품을 다시 공급하기 시작한 거죠. 아리따움 가맹점주들을 고려해 같은 브랜드여도 아리따움 취급 제품과 품목을 달리 하거나 일부 브랜드는 올리브영 판매를 제외하는 식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아모레퍼시픽은 계속 올리브영 공급 브랜드를 늘려왔습니다. 현재는 '라네즈', '에뛰드', '이니스프리' 등 아모레퍼시픽의 주력 브랜드들까지 대부분 올리브영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리따움 가맹점주들의 반발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까지도 가맹점주들은 4개 브랜드의 독점 판매권을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맹점주들의 반발에도 불구, 화장품 기업 입장에서 올리브영 입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상황입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아리따움은 고전 중입니다. 아리따움의 매장수는 2015년 1346개, 2016년 1335개, 2017년 1323개로 정체를 겪었습니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아리따움을 올리브영과 같은 '멀티브랜드숍'으로 전환하는 시도도 했습니다. 바로 아모레퍼시픽 제품 외에도 중소 화장품 브랜드들도 선보이는 '아리따움 라이브'였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아리따움은 순차적으로 매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아리따움 매장수는 396개입니다. 이 중 직영점은 한 곳뿐입니다.
반면 올리브영의 매장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388개입니다. 특히 10~30대의 젊은 소비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장품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유통채널입니다. 아모레퍼시픽뿐만 아니라 LG생활건강까지 올리브영 공급을 늘리는 이유입니다.
MZ 노리는 설화수
아모레퍼시픽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설화수가 올리브영에 입점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설화수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중 최초로 매출액 1조원을 넘긴 '메가 브랜드'입니다. 한때 중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 매출액 2조원을 바라보기도 했었죠. 면세점에서 설화수 '모시기' 경쟁까지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의 매출액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내 럭셔리 화장품 매출(1조2067억원) 중 설화수의 비중(32%)을 고려하면 40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매출을 국내에서 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서 부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외를 포함한 설화수 매출액은 1조원에 한참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의 주 타깃을 MZ세대로 돌리고 있습니다. 과거 설화수가 4050 여성들을 위한 브랜드였다면 이제는 2030에게도 어필하는 브랜드로 전환해 고객 층을 넓히겠다는 계산입니다. 실제로 2022년 설화수는 리브랜딩을 통해 제품을 업그레이드 하고 패키지를 변경했습니다. 브랜드 모델도 배우 송혜교에서 가수 블랙핑크 로제로 바꿨죠.
이번에 설화수는 올리브영 입점까지 마치면서 MZ세대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젊은 고객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올리브영은 최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라이브커머스 '올영라이브'를 진행했는데요. 이때 매출액은 7억원을 넘어섰습니다. 누적 시청자수는 35만명이었는데, 이 중 30대 이하 고객 비중만 61% 이상이었다고 하네요.
이렇듯 지난 15년여간 국내 화장품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브랜드라고 해서 계속 인기가 있으리라는 법도 없죠. 또 언젠가는 지금과 다른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사업모델이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차세대 설화수, 차세대 올리브영이 누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