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그룹이 사실상 와해됐습니다. 티몬이 오는 30일 2차 회생절차 협의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독립경영을 선언했기 때문인데요.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그리고 큐익스프레스마저 구영배 큐텐 대표와 선을 긋고 있습니다.
티메프의 큐텐 탈출
티몬은 지난 23일 독립경영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먼저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류광진 대표가 지휘하는 업무 체계를 확립해 큐텐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는데요.
티몬은 그간 큐텐테크놀로지에 내줬던 재무 인력을 돌려받아 자체 재무·자금 조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또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해 법무 조직을 만드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본업'을 강화할 상품본부도 새롭게 만들어 류 대표가 직접 지휘한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위메프 역시 티몬과 유사하게 큐텐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관련 조직을 신설할 가능성이 큽니다.
두 회사가 독립과 사업 재개를 공언한 것은 2차 회생절차 협의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지난 13일 진행된 1차 회생절차 협의회에서 소액 채권자를 우선 변제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한 자구안을 내놨는데요. 채권자협의회 측이 이를 반대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일부 채권자들은 소액 변제보다 '회사의 조기 정상화'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정산액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사업을 정상화 하지 않는 이상 돌려받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최근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티몬·위메프가 판매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미정산금액은 총 1조2790억원으로 최종 집계됐습니다. 피해업체는 4만8124개에 달합니다. 이 중 90.4%에 해당하는 4만3493개 업체는 1000만원 이하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들의 피해액은 총 414억원으로 전체 미정산액의 3.2%입니다.
반면 미정산액이 1억원 이상인 업체는 981개사로 전체의 2.1%뿐이지만 피해액은 1조1261억원에 달합니다. 티몬과 위메프의 보유한 자산으로 모두 갚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입니다.
현재 티몬과 위메프는 사업이 완전히 멈춰 현금 유입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이 빚을 갚으려면 사업을 재개해야 합니다. 채권자협의회에서 소액의 빚을 갚는 것보다 사업 정상화를 우선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티몬과 위메프는 오는 2차 회생절차 협의회에 앞서 사업 정상화 방안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 회사가 최근 본격적인 '독립'을 선언한 이유입니다.
무산된 합병
이로써 구영배 대표가 '합병'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구 대표는 1차 회생절차 협의회를 앞둔 지난 9일 티몬과 위메프를 합병해 사업을 정상화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었는데요. 이를 위해 'KCCW(K-Commerce Center for World)'라는 신규법인을 설립하고 합병 티메프를 포함한 큐텐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한다는 계획이었죠. KCCW에 구영배 대표의 큐텐 지분 전부(38%)를 백지신탁하는 한편, 판매자 주주조합을 만들어 KCCW 이사회에 참여시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구 대표의 계획은 지난 1차 회생절차 협의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구 대표의 KCCW 설립 계획을 빼고 자체 자구안만 회생법원에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 때부터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 구영배 대표와 '선 긋기'를 한 셈입니다.
그러자 구영배 대표는 티메프를 법률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 버렸습니다. 구 대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큐텐테크놀로지는 티메프 사태와 관련해 계열사 임원들에게 변호인을 지원하기로 했는데요. 이 지원 대상에서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의 이름을 빼버린 겁니다. 함께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같은 변호인을 쓰지 않는다는 건 법률 전략을 따로 짜겠다는 뜻이겠죠. 이때가 큐텐, 티몬, 위메프 사이의 균열이 확실시 된 시점이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뿐만 아니라 인터파크커머스, 큐익스프레스 역시 구영배 대표와 선을 긋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터파크커머스는 티몬, 위메프와 별도로 자율 구조조정 프로그램(ARS)을 신청했고요. 큐익스프레스는 구영배 대표를 최고경영진에서 해임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이시준 큐텐 재무본부장을 감사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책임 떠넘기기
티몬과 위메프 입장에서는 구영배 대표와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금을 유용한 구영배 대표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책임이 정말 구 대표에게만 있을까요. 물론 구영배 대표가 이 사태의 가장 큰 원흉이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겁니다. 무리한 사세 확장을 위해 자금 돌려막기를 하는 과정에서 구 대표가 최종 결정권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티몬과 위메프의 책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이번 사태의 미정산금은 무려 1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런 거액이 사라지는 동안 티몬과 위메프의 두 대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들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출석해 회사 재무조직을 큐텐테크놀로지에 떼줬기 때문에 자금의 흐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는 변명이 통할까요?
실제로 검찰은 구 대표 등에게 사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는데, 류광진, 류화현 대표 역시 회사 지배구조상 범행 과정에서 공모한 관계라고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영배 대표 뿐만 아니라 두 대표의 주거지 역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죠.
앞서 언급했듯 최근 티몬이 내놓은 사업 정상화 방안에는 류광진 대표가 업무 지휘의 주체가 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류 대표는 "조직과 인사를 합리적으로 쇄신해 경영 투명성을 확립하고 대내외 신뢰 회복과 더불어 장기적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입장도 내놨는데요. 오히려 류 대표가 티몬의 경영 투명성을 해치고 대내외 신뢰를 무너뜨린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번주에 진행될 2차 회생절차 협의회에서는 티몬과 위메프의 자구안이 다시 논의됩니다. 현실적인 투자 유치, 자금 조달 방안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두 회사의 자율조정 회생은 난관에 부딪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회생절차 협의회에서 두 회사의 사업 정상화 약속이 어떻게 구체화 될지 지켜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