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Biz북터뷰'는 경제를 비롯한 전문 도서의 저자와 만나 책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나눈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핵심을 비롯해 미처 말하지 못한 생각들을 쉽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독자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어느날 한 이커머스 회사의 주니어 기획자가 팀장으로부터 까다로운 과제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할 이커머스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를 조사해보라'는 것이었죠. 이 기획자는 '국내 이커머스 산업이 지나온 과거'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역사로부터 교훈과 인사이트를 얻겠다는 것이었죠.
시작과 동시에 그는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글·아마존·애플 등 해외의 성공 전략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국내 이커머스 계보를 직접적으로 다룬 자료는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그는 퇴근 이후에도 틈틈히 오래된 기사 등을 하나하나 조사해 국내 이커머스 연표를 제작했습니다. 그가 현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던 2011년도 이후의 사건을 정리할땐 당시 업계 내부 반응까지 생생하게 기록했죠. 그간의 역사를 잇는 여정은 과제를 제출한 이후에도 계속 됐습니다.
지난 2022년에 드디어 6년간의 노고가 깃든 책이 발간됐습니다. 그가 쓴 '대한민국 이커머스의 역사'에는 초창기 전자상거래 시절의 1996년부터 팬데믹 끝자락인 2022년도까지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카카오스타일 프로덕트 매니저(PM)으로 재직 중인 이미준 작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현재 경력 14년차의 시니어 PM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커머스 산업과 관련된 칼럼 기고와 강연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책이 발매됐던 2022년은 엔데믹 초입에 들어가는 시기였습니다. 2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의 이커머스의 지형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갈라파고스'서 벗어난 K이커머스
이 작가는 2022년 당시만 해도 한국 이커머스 및 IT 플랫폼 생태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시장은 '갈라파고스 섬'이고, 한국 소비자는 '푸른발부비새'다."
갈라파고스는 육지로부터 고립되어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섬으로 유명하고, 푸른발부비새는 이 섬에만 서식하는 종인데요. 한국은 글로벌 빅테크(구글, 아마존 등)의 서비스들이 자리잡지 못하고, 기존의 토종 플랫폼이 주류로 뿌리내린 이례적인 시장이라는 겁니다. 이같은 특수한 배경은 국내 특유의 인터넷 환경이나 규제 등의 이슈로 글로벌 빅테크가 토종 업체에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들어 국면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현재는 인터넷 환경이 표준화되면서 해외 서비스들의 UI(유저 인터페이스)도 많이 발전했다"는 겁니다. 한국 소비자에 최적화된 UI는 그간 국내 플랫폼이 국내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던 영역이었는데요. 이러한 이점이 서서히 약해진 것이죠.
그는 주요 고객층의 세대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이전 이커머스 고객이 주로 네이버를 사용했다면 현재 고객은 유튜브나 구글,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글로벌 서비스에 친숙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발 '알·테·쉬' 저가공세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이하 '알테쉬')를 필두로 한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의 국내 시장 진출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이 작가는 "몇년 전만 해도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네이버-쿠팡' 중심의 양강 구도로 형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C커머스의 국내 진출 이후 쿠팡보다는 네이버 쪽이 더 위기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강조 했습니다.
잘 나가던 네이버가 C커머스 진출로 흔들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전략' 때문입니다. 네이버는 개인 셀러들을 모집해 스마트 스토어 시스템을 확장해나가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기존에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개인 셀러들은 대부분 중국 직구 상품에 마진을 얹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해왔는데요. 중국 직구가 간편해진 지금,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선 직구 플랫폼을 놔두고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파는 스마트스토어에서 상품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졌죠.
네이버가 흔들리는 반면 쿠팡은 C커머스 진출에도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팡은 2014년 도입된 로켓배송 시스템과 함께 자체제작 브랜드(PB)상품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몸집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는 C커머스의 저가공세 전략을 방어할 만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죠.
C커머스 침공에 쿠팡보다 네이버가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네이버 커머스 부문의 매출 상승세가 한 풀 꺾인 모습입니다. 지난해 2분기 네이버 커머스 부문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무려 44% 성장했는데요. 1년이 지난 올 2분기에는 성장세가 13%에 불과했습니다.
'의도적 적자' 벗어나 '내실 다지기'로
이 작가는 엔데믹 이후 이커머스 업계에 다가온 위기 상황은 각 기업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귀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코로나 특수로 '의도적인 적자 전략'이 먹혔으나 이제는 형국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의도적 적자'는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거래량(GMV)을 부풀려 시장을 선점하고 기업 규모를 키우는 전략을 뜻합니다. 즉 단순히 거래량만을 키우기보단 '내실 다지기'에 들어갈 때라는 거죠. 이 과정에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테고요.
실제로 이커머스 기업들은 지난 2년간 하나둘씩 기존의 의도적 적자 전략을 탈피해 체질 개선에 들어가는 추세입니다. 기업의 사업 방향성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죠. 저성장기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오늘의 집·컬리와 같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사례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큐텐'을 중심으로 한 '티몬·위메프'가 그랬죠.
지난 7월 발발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 대란'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던 옥석 가리기 국면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 정치계는 발빠르게 관련 방지법이 활발히 논의 중에 있는데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하 전금법)'과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모두 전자금융업종에 속한 업체 및 중개거래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규제안에 해당하죠.
안그래도 체질 개선으로 바쁜 이커머스 기업에 또다른 난제가 떨어진 겁니다. 새로운 규제안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기존 이용자 편의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죠. 이 작가는 대표적인 예시로 전금법의 세부 내용중 하나인 전자상거래와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를 분리하는 방안을 언급했습니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그간 자체 PG사를 운영하면서 정산 주기를 앞당기고, 할인쿠폰 적용시 발생할 수 있는 계산 오류를 유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요. 앞으로는 현행의 시스템 유지가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작가는 "이커머스 업계가 내부적인 체질 개선 외에도 앞으로의 제도적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때가 왔다"며 "이 또한 기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또다른 잣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