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최근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가 출시 11년만에 리뉴얼을 단행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레시피를 변경해 맛에 변화를 줬다는 건데요. 맥주의 맛을 내는 요소는 여러가지지만 클라우드는 그 중에서도 '홉'의 사용 비율을 바꿨습니다. 기존에는 아로마홉과 비터홉을 7:3의 비율로 섞어썼는데 이제는 아로마홉만 사용하기로 했다는데요. 이를 통해 쓴맛을 줄이고 풍성한 향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홉은 맥주의 주 재료 중 적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맥주의 고유한 맛과 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원료로 꼽히죠. 맥주에 다채로운 향과 쌉싸름한 맛을 내는 홉, 언제부터 사용한 걸까요?
천연 방부제
홉은 유럽과 아시아, 미국의 온대 지역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입니다. 솔방물 모양의 꽃이 피는데, 이 꽃이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홉은 보통 북위 35~55도의 지역에서 재배됩니다. 이 지역에 속하는 국가로는 맥주가 유명한 독일과 체코가 있죠. 호주,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홉을 재배하고요. 우리나라에서도 강원 홍천군 등에서 홉을 재배합니다. 미국 아이다호 주도 홉의 대표 생산지로 꼽힙니다. 독일 홉 전문기업 바르트하스의 세계 홉 및 맥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홉 재배 면적이 가장 넓은 국가는 미국과 독일이었는데요. 두 국가는 전 세계 홉 재배 면적의 71%를 차지합니다.
홉에는 수백가지 품종이 있는데요. 크게 쓴맛을 내는 비터홉, 향을 더하는 아로마홉, 쓴맛과 향을 모두 더할 수 있는 듀얼홉 등 세 가지로 나뉩니다. 과거에는 단 맛이 있는 라거,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가 인기를 끌었는데요. 맛의 균형을 잡기 위해 쓴 맛을 더할 수 있는 비터홉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비터홉에는 알파산이라는 물질이 많이 함유돼 쓴 맛이 납니다.
반면 최근에는 홉이 주는 다채로운 향이 인기를 끌면서 아로마홉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양조 과정 마무리 단계에서 사용되는 홉의 종류도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홉은 언제부터 맥주에 사용됐을까요.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인 822년, 중세 프랑스에서 맥주에 홉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더 대중화 된 것은 12세기 경 홉의 천연 방부제 기능이 발견되면서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한 수녀원에서 양조 과정에서 홉을 사용하면 방부 및 항균 효과가 있어 맥주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걸 알아냈죠. 이때부터 맥주에 홉을 넣어 부패를 막으면서 보관 기간을 늘리고 더 먼 곳으로 판매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홉의 방부 기능이 탄생시킨 맥주도 있는데요. 바로 IPA입니다. 영국에서 인도로 맥주를 가져가는 과정에서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홉을 많이 넣으면서 탄생한 맥주입니다. 이름부터가 '인디언 페일 에일'이죠. IPA의 맛과 향이 다소 무거운 것도 홉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기후 변화
전 세계에서 홉 생산량이 가장 많은 미국의 생산량 순위를 보면 현재 인기가 높은 홉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인기가 높았던 홉은 '캐스케이드'입니다. 캐스케이드는 듀얼홉인데요. 시트러스 향, 소나무 향, 꽃 향 등이 난다고 하네요.
현재 가장 인기가 높은 홉은 '시트라'입니다. 시트라홉은 아로마홉으로 분류됩니다. 열대과일 향과 자몽과 오렌지, 귤 껍질 등 시트러스 향이 난다고 하네요. 시트라홉은 2018년부터 미국에서 캐스케이드를 밀어내고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세계푸드의 데블스도어 등 많은 국내 수제맥주 브루어리가 시트라홉을 사용한 맥주를 내놓고 있어 국내에서도 친숙한 홉입니다. CTZ, 심코 등도 미국에서 생산량이 많은 홉입니다.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홉은 체코의 '사츠홉'입니다. 사츠홉은 홉 품종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히는데요. 사츠홉을 생산하는 체코 자테츠는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죠. 홉 재배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것은 자테츠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홉 생산 지역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입니다. 바로 기후 변화 때문인데요. 홉은 재배 환경에 상당히 민감한 작물입니다. 독일, 체코 등 연평균 8~10도의 대륙성 기후에서 잘 자랍니다. 이 지역이 '맥주 명가'인 데는 이유가 있죠. 그런데 최근 이런 지역에 기후 변화가 생기면서 홉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르트하스의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대 홉 재배국가인 미국의 2023년 재배 면적은 전년보다 8.9% 줄었습니다. 다행히 생산 기술 고도화로 생산량은 유지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면적은 줄어들었는데 생산량이 늘면서 홉이 함유한 알파산이 줄어들었습니다. 2023년 평균 알파산 함량은 10.0%로 전년보다 낮은 수준이었죠. 곧 홉의 생산량마저 감소하고 맛까지 변화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 변화는 홉뿐만 아니라 맥주의 주 재료인 보리, 물에도 악영향을 미치죠. 시간이 흐르면 현재처럼 맛있는 맥주를 먹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맥주를 즐길 때도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