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이 한·일 롯데 식품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됐습니다. 신동빈 회장이 공들여 온 '원롯데' 전략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그 중심에 아들을 세운 겁니다. 신 부사장이 그룹 신사업인 바이오에 이어 주력 사업인 식품까지 손에 쥐면서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일 연결고리
롯데그룹은 조만간 싱가포르에서 롯데웰푸드와 일본 롯데제과의 합작법인을 출범합니다. 신 부사장은 이 법인의 이사회 의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신 부사장이 이사회 의장직까지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신 부사장의 롯데 입성은 2020년 일본 ㈜롯데 부장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LSI(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와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를 거치며 일본에서 투자·금융 분야 경험을 쌓았죠.
2023년에는 롯데지주에 신설된 미래성장실장으로 한국에 건너오며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임하며 신동빈 회장이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바이오 사업도 이끌게 됐습니다.
이후 신 부사장은 한·일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 이름을 올리며 보폭을 확대해 왔습니다. 2024년 6월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에 선임되며 일본 지주사에 입성했고요. 지난해 11월에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로 선임되며 처음으로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의 대표이사 타이틀도 달았습니다.
이번에 신 부사장이 맡게 된 한·일 롯데그룹 식품 합작사는 한국 롯데웰푸드와 일본 롯데제과의 글로벌 사업을 아우르는 역할을 합니다. 신동빈 회장은 그동안 정기적으로 '원롯데 식품사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양사 협력을 이끌어왔는데요. 이 전략회의의 결과물인 합작법인 의장에 아들을 앉힌 것은 '원롯데' 전략의 전면에 신 부사장을 세우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경영 시험대
신 부사장이 바이오에 이어 식품을 맡게 된 것은 이 사업이 한·일 롯데의 교집합이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롯데그룹은 식품 외에도 유통, 화학, 호텔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요. 유통, 화학 등은 한국 롯데가 독자적으로 키워온 사업인 만큼 일본 롯데와의 접점이 약합니다.
반면 식품은 한·일 롯데가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사업입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롯데를 창업한 뒤 1967년 한국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이어진 양사의 모태 사업이죠. 신 부사장이 이 합작법인 의장을 맡는다는 건 그룹의 뿌리를 승계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신 부사장에게 맡겨진 책임도 막중합니다. 한국과 일본 내수 시장이 동시에 정체되면서 양사의 해외 공동 진출이 절실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신 부사장은 이 합작법인 의장으로서 양사의 생산·영업·물류 인프라 연계와 해외 시장 공략을 진두지휘하게 됩니다. '빼빼로'와 같은 메가 브랜드를 키우는 한편 새로운 시장 진출을 이끄는 것도 그의 몫입니다.
따라서 이번 자리는 신 부사장에게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기존에도 한·일 롯데 양쪽에서 여러 이사직을 수행해 왔지만 이번에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인데요.
신 부사장이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를 맡아 경영을 책임지고 있긴 하지만 신사업 특성상 성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식품 사업의 경우 이미 궤도에 오른 탄탄한 사업에서 한·일 시너지를 끌어내는 구조라,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신 부사장이 이번 합작법인 의장을 맡은 건 롯데그룹 승계에서 원롯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신동빈 회장은 최근 수년간 한·일 롯데를 하나로 묶는 원롯데 전략을 직접 진두지휘해 왔는데요. 신 회장에게 원롯데 전략이 중요한 건 한·일 롯데가 오랫동안 사실상 분리된 채 운영돼 왔기 때문입니다.
승계를 위한 원롯데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원래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에게, 일본 롯데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맡기는 방식의 승계를 구상했습니다. 신 회장은 2015년 시작된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면서 한·일 롯데를 모두 이끌게 됐지만 여전히 신격호 명예회장이 설계한 분리된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일 양사가 같은 브랜드를 공유하면서도 따로 움직이다 보니 시너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온 거죠. 원롯데는 이 비효율을 걷어내고 하나의 롯데로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략입니다.
승계 측면에서도 원롯데는 중요합니다. 한국 롯데가 사실상 일본 롯데의 지배에 있는 구조 때문입니다. 롯데그룹은 아직도 '일본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살아 있는데요. 한국 롯데그룹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가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과반 지분을 보유한 회사라는 점입니다. 신 전 부회장이 매년 주주총회마다 자신의 이사 선임안과 신동빈 회장의 이사 해임안을 올리며 경영권 흔들기를 반복해 온 것도 이 때문이죠. 한국 롯데 매출이 그룹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지배구조 꼭대기에는 일본이 있다는 '국적 논란'도 해묵은 숙제로 남아 있고요.
호텔롯데 상장이 이 구조를 풀 해법으로 거론돼 왔지만 면세업 부진 등으로 수년째 지연되고 있습니다. 지분 정리가 안 되는 동안 신동빈 회장이 택한 방법이 '사업적 결합'입니다. 한·일 롯데를 먼저 사업으로 묶어두고 그 중심에 아들을 세우는 방식으로 승계 기반을 다질 수 있겠죠.
특히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분만으로 장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를 쥘 수 있었던 건 이사회 장악력과 종업원지주회·임원지주회의 지지 덕분이었는데요. 단순히 지분만 물려받아서는 롯데홀딩스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동빈 회장이 종업원지주회·임원지주회의 표심을 얻어 신동주 전 부회장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신 부사장도 결국 한·일 양국 임직원과 이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얻어내야 합니다. 한·일 식품 합작법인의 의장으로서 양국 임직원을 이끌고 실적을 내는 것이 그 첫 걸음인 셈이죠. 신 부사장이 이 자리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지켜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