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이 가계대출의 한도를 높이거나 금리대를 낮추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는 대통령인수위원회가 대출규제 완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데다가 올해 1분기 은행권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대출여력을 확보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일부 은행에서는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상반기 확립했던 핵심성과지표(KPI)에서 가계대출 부분의 점수를 높이는 상황을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하반기 들어서는 은행들이 대출 영업에 더욱 사활을 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변수는 금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가운데 시장금리가 치솟으면서 은행 대출 금리도 연달아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상 대출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의 대출이 부실화 될 가능성도 동반 상승하는 만큼 리스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채비를 하는 모습이다.
3개월 연속 줄어든 가계대출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3월말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1937억원으로 전달대비 2조7438억원 감소했다.
지난 1월과 2월 각각 1조3634억원, 1조7522억원 감소한 바 있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한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4개월 연속 가계대출의 감소세가 이어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지난 12월부터 줄어들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의 강도높은 가계부채 총량관리와 함께 올해 도입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도입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지난해 12월의 경우 은행권의 연간 가계부채 증가 관리 목표인 5%를 3분기만에 채우면서 사실상 은행들이 가계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이어 해가 바뀌면서 가계부채 총량관리의 기준은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DSR이 도입되면서 상대적으로 대출 문턱이 낮았던 신용대출의 증가세가 크게 꺾였고 이로 인해 은행권의 대출 증가세가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다가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에 이어 지난 1월에도 기준금리를 연이어 인상하면서 대출금리가 상승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현재 시중은행이 취급하고 있는 가계대출중 70% 가량은 시장금리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는 변동금리 대출인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가계가 빚을 내는 것보다 갚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가계부채총량관리 영향으로 인해 가계부채 취급액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같은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DSR제도가 도입되고 금리까지 오르면서 가계대출의 취급량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핵심 이익원 가계대출, 바라만 볼 수 없다
은행들이 사실상 1분기 가계대출 분야에서 제대로 된 영업을 펼치지 못하자 은행들은 2분기 들어 본격적으로 가계대출 확대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5000만원으로 줄였던 신용대출의 한도를 최대 2억원까지 끌어올리고 일부 대출상품의 금리를 인하하거나 지난해 한시적으로 제외시켰던 우대금리 항목을 부활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KB국민, 신한, 우리은행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혹은 전세담보대출의 가산금리를 0.1%포인트 가량 인하하고 0.2%의 우대금리 항목을 신설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신용대출의 한도를 최대 2억원까지 확대한데 이어 가산 금리를 0.2%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은행들이 이처럼 가계대출 확대에 나서는 것은 금리상승기라는 최대의 이익 실현 시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이 오히려 줄어들자 수익성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평가다.
실제 주요 은행들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전체 대출 잔액중 50%가량이 가계대출로 구성돼 있다. 즉 은행의 핵심 이익원인 이자이익중 절반이상은 가계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계대출이 줄어든다는 것은 성장성의 후퇴를 의미한다.
특히 다음달 출범 예정인 윤석열 정부가 대출에 대해 완화적인 태도를 미치는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은행 고위 관계자는 "1분기 가계대출 전체가 줄어들면서 적극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측면이 가계대출 취급 확대의 배경이 됐다"며 "여기에 인수위에서 DSR규제 완화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LTV완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간 가계부채를 강하게 옥죄어 왔던 고승범 위원장이 임기를 끝내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당장 통계에서도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은행권 대출행태 서베이 자료를 보면 올해 2분기 은행들의 대출태도는 주택대출의 경우 11, 일반신용대출의 경우 2를 기록했다. 이는 0을 기준으로 0보다 낮을 경우 대출을 깐깐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4분기에는 주택대출 대출태도는 -35, 일반신용대출은 -41 이었다. 올해 1분기에도 각각 -14와 -17을 기록했다. 이것이 2분기 들어서는 급선회한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가계에 대한 대출태도는 그간 강화기조를 지속해 왔으나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와 함께 규제 조정이 예상되면서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KPI…가계대출·리스크 확대 배점 높아지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선 현장에서 영업의 척도가 되는 은행권의 핵심성과지표(KPI)도 대폭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은행권은 올해 상반기 KPI항목중 △퇴직연금 등 WM(자산관리) 상품 △디지털 플랫폼 고객 유치 △신용카드 유치 등의 배점을 확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중은행 한 지점장은 "지난해말 영업현장에 배포된 KPI에서는 은행의 핵심과제인 디지털, WM 고객 유치와 함께 중소기업 대출 확대가 배점이 높아 1분기만 해도 이러한 부분에 집중했다"며 "아직 KPI가 수정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가계대출 확대도 전면 검토하고 있어 하반기에는 가계대출 부분의 KPI 배점이 상향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 역시 "아직 상반기에 수립한 KPI를 수정한 측면은 없다"면서도 "다만 본부 차원에서 가계대출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꾸리고 있는 만큼 일선 영업점에도 이같은 방침이 전달됐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대출확대와 함께 강도높은 리스크 관리에도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긴축을 시작으로 시장금리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져서다.
당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정책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이상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은행 대출의 기준이 되는 국고채 금리는 연일 상승세를 기록중이다.
실제 가계대출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벤치마킹 금리인 금융채 5년물의 경우 연초 2.3%대에서 형성됐던 금리가 이달들어 3.5%선까지 치솟았다. 이에 일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최상단은 6%까지 뛰어올랐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대출금리 상승은 지난해 부터 예측된 측면이 있어 일부 은행의 경우 올해 상반기 KPI에서 연체율 등 리스크 관리에 가장 배점을 높게 책정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금리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리스크 관리에 더욱 공을 들일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말부터 시장금리 상승은 예상이 됐고 이에따라 KPI에서 리스크 관리에 배점을 높게 배정한 바 있다"며 "금리상승세를 감안하면 가계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하반기에는 더 꼼꼼한 리스크 관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