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과감히 푼다. 이르면 내년부터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높아진 대출 문턱을 낮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속내는 다르다. 최근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조치라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다주택자 등을 동원해서라도 집값의 급격한 하락을 막겠다는 것인데 고금리 상황을 감안하면 기대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이와 함께 대출 규제를 푼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 기조가 바뀔 경우 가계부채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다주택도 주담대 허용…이유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는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시장 상황을 봐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와 방향을 맞춰 주담대를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후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대출 규제를 순차적으로 해제해 왔다. 생애최초 내집마련일 경우엔 LTV를 80%까지 허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규제지역내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대해 LTV를 50%로 통일하고, 서민·실수요자에게는 최대 70%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규제지역 15억원 초과 주택을 매입할 때도 주담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관련기사: '빚내서 집사라' 시즌2?…서민 실수요자 LTV 70%(11월10일)
그동안 규제 완화는 무주택 실수요자(갈아타기 1주택자)를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대출금리 상승과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유지 등으로 규제 완화 효과는 미미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매수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선 주변 시세보다 가격을 크게 낮춘 급매물도 소화하기가 힘겨운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누적 주택 매매거래량은 44만9967건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49.6% 급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 등을 활용하기 위한 주담대 허용 카드를 꺼냈다. 고금리 현상 지속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 버티지 못한 집주인들이 내놓은 집을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담보가치도 떨어지면서 금융시장도 불안해질 수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거래가 잠긴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거래를 늘릴 수 없으니 다주택자들에게 금융 활로를 열어서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 급락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약일까 독일까
무주택 실수요자를 넘어 다주택자들을 대상으로도 대출 문턱을 낮춰주기로 했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 다주택자들은 주담대를 활용해 가격이 크게 떨어진 급매물을 노릴 수 있지만 이들 역시 고금리에 대한 부담과 당분간 집값 하락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선뜻 시장 진입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다주택자 주담대 허용에 대한 금융권 시선도 엇갈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비용 부담에 버티지 못하고 집을 팔려는 1주택자들이 늘고 있어 급매물을 받아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며 "이를 통해 시세를 받쳐주고 주택시장 연착륙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집값이 상승할 때는 금융비용 부담에도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가 있겠지만 당분간 집값 하락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다주택자도 매입 시점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기에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급격히 위축되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추후 가계부채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상 선임연구위원은 "시장이 조정된 후 경기가 살아날 때는 (규제완화 조치가)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집값 회복기에 가격을 급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