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을 향한 금융감독원 입김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올해와 내년까지 은행 지배구조에 대한 감독·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배구조 개선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특히 이사회 구성·운영은 물론 최고경영진 선임과 경영승계절차에 대해서도 은행권과 함께 모범 사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구성된 금융지주를 이끌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가 이전과 다른 체제로 운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에선 오는 11월 윤종규 KB금융 회장 임기가 종료되는 만큼 차기 회장 인선에 금감원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이 적용될지 주목하고 있다.
차기 윤종규, 새 가이드라인 변수 될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후 지속적으로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문제 삼았다. 금융지주들의 임원추천위원회(혹은 회장추천위원회) 절차 등이 투명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선 거취 논란이 있을 당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손 회장이 물러난 이후 차기 회장 후보군 롱리스트와 숏리스트 선정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관련기사: 이복현 "금융사 지배구조 투명하게" 또 일침(2월6일)
금감원이 은행 최고경영진 선임과 경영승계절차 등과 관련, 업계 자율 모범규준 뿐 아니라 직접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결정한 배경이다.
금감원은 'CEO 등 경영승계 계획에 이사회가 활발하게 참여하고, 적정한 승계 계획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원칙을 강조하며 씨티그룹의 전 CEO인 마이클 코뱃 선임 절차를 해외 사례로 제시했다.
마이클 코뱃 전 CEO는 상시후보군(롱리스트)에 포함되기 4~5년 전부터 상시후보군으로 육성됐고, 다양한 부서에서 경영 역량을 키웠다.롱리스트에 포함된 후에는 최종후보군(숏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계열사 CEO 등 여러 사업부문 경영 경험을 쌓았다. 숏리스트에 포함된 후에도 그룹 전략수립 역량을 키우는 등 그룹 CEO로 육성됐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금융권에선 금감원의 구상이 반영된 가이드라인이 언제쯤 마련돼 적용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 회장 가운데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남은 임기가 가장 짧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NH농협금융은 작년 말과 올초에 걸쳐 회장 교체를 단행했고,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해 3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2014년 11월부터 KB금융을 이끌어온 윤종규 회장은 3연임 마지막 임기인 만큼 교체가 유력하다. 윤 회장 임기는 오는 11월20일까지다. 가이드라인 마련 시기에 따라 KB금융이 차기 회장 선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지을 순 없지만 관심 사안인 만큼 가이드라인 마련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KB금융은 지난해 초 조직개편을 통해 허인·양종희·이동철 부회장과 박정림 KB증권 대표 등 4명이 각 사업 그룹을 이끄는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양종희 부회장은 개인고객과 WM/연금, SME 부문을 맡고 허인 부회장은 글로벌과 보험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이동철 부회장은 디지털과 IT부문, 박정림 대표는 자본시장과 CIB를 담당하고 있다.
부회장 3인의 경우 이전과 다른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서 그룹내 핵심 사업을 두루 경험하고 있다. 이중 성과를 내는 인물이 차기 회장이 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 전망이다. ▷관련기사: KB 윤종규, 부회장들 업무 순환시킨 속내는(21년12월30일)
이와 관련 금감원이 제시한 CEO 육성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승계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KB금융 설명이다.
KB금융 관계자는 "특정 인물을 차기 CEO로 지정하는 게 아닌 경험과 교육을 비롯해 이사회 검증 과정도 있다"며 "장기간에 걸쳐 후보군을 선정하는 것으로 부회장뿐 아니라 계열사내 주요 경영진들도 모두 CEO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승계절차 갖췄는데…이사회 운영이 중요
KB금융뿐 아니라 국내 금융지주들은 자체적인 승계절차 구조를 통해 CEO 후보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나금융도 김정태 전 회장 시절 3명의 부회장(함영주·이은형·지성규)중 한명인 함영주 부회장이 낙점돼 경영승계가 이뤄졌다. 이후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박성호 전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증권 사장을 신임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기존 이은형 부회장까지 3인 부회장 체제를 다시 갖췄다. ▷관련기사: 하나금융 삼두마차…'디지털' 박성호·'글로벌' 이은형·'비즈' 강성묵(22년12월27일)
신한금융의 경우 조용병 회장 뒤를 이어 진옥동 전 신한은행장이 지난달 주주총회를 거쳐 신임 회장 임기를 시작했다. 금융권에선 진옥동 회장이 KB금융과 하나금융처럼 부회장직을 신설할지에 관심을 갖는다. 이 역시 경영승계에 중요한 요인인 까닭이다. ▷관련기사: 진옥동의 신한, 세대교체 바람불까(22년12월13일)
이처럼 금융지주들이 경영승계를 위한 절차를 갖추고 있는 만큼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직접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에 대해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경영승계 가이드라인 구축 등은 지배구조 이슈 발생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감독당국에서 개별 금융사 지배구조를 직접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지적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최근 금융당국 입김에 금융지주 수장이 대부분 교체됐는데 연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선임 절차는 엄격하고 투명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연임을 무조건 막을 경우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해 그룹 육성을 위한 혁신 등이 위축되고 정상적인 경영에 제약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국내 금융지주들이 경영승계를 위한 체계는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투명한 운영과 실제 후보들을 면밀히 평가하기 위한 이사회 운영이 중요한 요소라는 조언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지주 임추위도 롱리스트 후보군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는 등 역할을 하고 있다"며 "문제는 임추위를 구성하는 이사들이 후보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금감원이 제시하는 롱리스트 관리보다 (롱리스트)후보들이 이사회에서 현안에 대해 발표하는 등 이사진들이 후보자 능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이사회 운영 개선이 더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