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가계대출 자산 증대 전략에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등 반복적으로 금융당국 관리 영향을 받았는데, 이에 더해 관리목적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이 본격 도입되는 까닭이다.
시중은행들은 지난해부터 기업대출 시장으로 눈을 돌린 상태다. 다만 기업대출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기업 경기도 위축된 상황이라 대출자산 증대가 녹록지 않다. 여기에 신탁과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 확대 여력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대출보다 더 큰 기업대출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9월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전년 말보다 38조5577억원(5.6%) 증가한 730조9671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초 일시적으로 가계대출 잔액이 줄기도 했지만 7~8월 급증한 영향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더욱 조이기로 했다. 9월부터 은행권은 현재 DSR이 적용되지 않는 전세대출과 정책금융상품 등도 포함해 DSR을 산정한 관리목적 DSR을 금융당국에 제출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내년에는 은행들의 경영계획에 DSR 운영계획 등도 포함시키겠다는 게 금융위원회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의 가계대출 운용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년 초 경영계획을 새로 설정하더라도 이전처럼 가계대출 시장에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는데 제약을 받는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내년 은행 가계대출 한도 줄고 더 깐깐해지나(10월15일),은행, 당국에 전세·정책대출 DSR 첫 제출…규제 확대 신호탄?(10월16일)
다행인 점은 기업대출 자산이 가계대출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부분이다. 지난해 말보다 9월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55조435억원(7.5%) 증가한 825조1885억원으로 가계대출 증가액을 웃돌았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정책 불확실성이 큰 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영향으로 분석된다.
남은 건 기업대출 시장…우량기업 중심 경쟁 심화
은행들이 기업대출 시장에 주력하는 것은 가계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롭고 자산 증대에도 효율적인 까닭이다. 특히 우량한 기업에게 금융(대출)을 공급할 경우 리스크가 적고 유동성 확대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기업 뿐 아니라 우량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 출혈경쟁을 감수할 정도로 주력했다"며 "우량 기업을 확보하면 직원 급여와 퇴직연금 등 개인 고객 확보 효과도 있어 단기간 이자이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정된 파이 안에서 은행 간 경쟁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올 상반기 경쟁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린 터라 추가적으로 자산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축된 경기 상황을 고려해도 기업대출 확대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고 상반기 경쟁적으로 늘린 기업대출을 추가적으로 늘리기도 어렵다"며 "향후 은행의 대출 규모 증가폭은 매우 작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기업대출 관계자는 "기업들이 성장을 지속하려면 레버리지 효과가 필요해 대출 수요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문제는 가계부채 관리로 개인대출(가계대출) 영업에 제약이 생기면 기업대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지금보다 출혈경쟁이 심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