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바이오 산업 영역에 11조6000억원을 투자키로 하면서 관련 업계에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다만 지원 대상을 임상 3상·상업화 단계 기업에 한정키로 하면서 초기 연구개발 생태계 지원을 기대했던 벤처 업계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국민성장펀드 제2차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총액 150조원 규모의 펀드에서 11조3000억원을 '차세대 바이오·백신 설비구축 및 R&D' 몫으로 배정키로 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정책자금은 임상 3상 신약개발을 위한 설비투자 자금 지원에 집중됐다. 수천억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임상 3상 과정을 정책 자금을 통해 지원해 유망신약의 해외 기술이전을 막고 상용화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민간 자금 조성해 바이오 산업 투자
국민성장펀드는 일반 국민이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아닌 정부와 민간이 자금을 조성해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해 활용되는 펀드다. 이렇게 모인 자금은 정부·민간이 직접 지분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벤처·스케일업 펀드 등 하위 펀드 투자자들을 활용한 간접투자를 통해 바이오 기업들에게 투자된다.
정부가 지원 산업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시장에 자금이 풀리는 만큼, 어느 단계에 자금이 집중되느냐는 민간 투자자들의 투자 방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바이오 벤처업계가 이번 지원 대상 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이오 산업은 개발 단계로 보면, 후보물질 발굴·전임상·임상 1~3상·상업화로 이어지는 긴 가치사슬을 가진 산업이다. 임상 단계가 높아질수록 소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상업화를 위한 생산 설비와 글로벌 판매망 구축에도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대부분 연구개발에 특화된 중소·벤처 기업으로, 이같은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임상 2상 단계에서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을 이전하고 개발비를 회수하는 방식이 국내 바이오 업계의 주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아 왔다.
임상 3상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주장해온 제약바이오협회는 이번 정책 방향을 환영했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자체 개발 자산의 부가가치를 국내에서 온전히 실현하는 사례가 나온다면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일"이라면서 "결국 성과를 내는 바이오 기업이 나와야 가치사슬 앞단에 있는 초기 벤처들에게도 자금이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벤처업계 "초기 생태계 소외…모험 자본 모험 안해"
바이오 벤처업계에서는 이번 투자 계획에 대해 "균형의 측면에서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오 벤처들의 어려운 자금조달 상황을 애써 모른척이라도 하듯 정부 자금이 대기업·상위 바이오 기업 지원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이번 정책자금은 임상 3상 자산에 몰리고 있다. 보통 임상 3상은 상업화를 목전에 둔 단계로, 2~3년 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신약 출시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바이오 업계에서 비교적 리스크가 낮은 투자처로 꼽히는 이유다.
한 바이오 벤처 관계자는 "벤처 투자자들이 전임상·임상 1상 단계의 바이오 기업들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기대했었다"면서 "이번 펀드 조성 내용이 이미 자본조달이 가능한 후기임상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에 집중됐다는 것은 바이오 벤처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책 자금의 후기임상 집중이 민간의 투자 쏠림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다른 한 바이오 벤처 대표는 "지금도 바이오 섹터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자들은 상장 전 투자(pre-IPO)에 관심을 두는 상황"이라면서 "정책 자금이 후기 임상 자산 위주로 흘러들어간다면 모험 자본이 모험을 감수하지 않는 경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전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이어진 연구개발 단계 투자 위축도 이같은 우려는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그는 "초기 임상 자산에 대한 투자는 윤석열 정부 당시 연구개발 자금 삭감 이후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며 "초기 임상 자산에 대한 자금 조달은 업계 전체로 보면 10년 앞을 내다보는 일인데, 이번 펀드 역시 단기 성과에 집중돼 초기 생태계 위축이 더 깊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