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위기에 내몰린 삼성중공업이 감자 카드를 꺼냈다. 자본금을 감소시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눈에 띄는 점은 이번 감자의 종류다. 감자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통상 주식 수를 줄이는 것과 달리 삼성중공업은 주식 수를 유지하면서 액면가를 낮추는 방식을 택했다. 회사 측은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감자 발표 이후 주가는 16% 이상 급락하며 회사 측의 감자방식 취지 설명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1Q 5359억 손실…"부분 자본잠식 돌입"
지난 4일 삼성중공업은 보통주 6억3000만주에 대해 80%의 무상 감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감자가 완료되면 자본금은 3조1506억원에서 6301억원으로 감소된다. 자본금이 감소한 만큼 자본잉여금 2조5000억원이 발생해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방식이다.
작년 말 삼성중공업의 자본은 3조7182억원으로, 자본금(3조1506억원)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이후 순손실이 이어졌고 '누적된 당기순손실'(결손금)이 자본을 갉아먹으면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분기에도 535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부분 자본잠식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유승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1분기 말 기준 부분자본잠식 상태에 접어들었다"며 "올해 말 기준 자본잠식률은 14%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주식 수 줄이나 액면가 줄이나
이번 감자가 특이한 것은 자본금을 줄이는 방식에 있다. 감자는 외부 자금의 유입 없이 회계 장부의 자본 계정을 조정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일종의 '숫자 놀음'이다. 보통 감자를 추진하는 기업은 주식 숫자를 줄인다. 자본금은 액면가에다 발행주식수를 곱해 산정하는데, 주식수를 줄여 자본금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액면가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흔한 방식은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통상적인 발행주식 감소와 달리 감자 후 발행주식수의 변동이 없고 주식 평가 금액이 동일해 주주입장에서 지분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6일 삼성중공업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16.2% 떨어진 6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장 초반엔 5620원 선까지 무너졌다. "주주입장에서 지분가치 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 무색한 것이다.
더욱이 주식 수를 줄이는 감자 방식도 원론적으론 주주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주식수를 줄이는 대신 감자비율대로 주가를 올려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100주의 주식을 20주로 줄이는 감자를 진행했다면(병합), 주식 1주의 가치는 20원에서 100원으로 올라가게(주가 조정) 된다. 하지만 시장은 감자를 추진할 만큼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는 것으로 판단, 감자 후 주가가 급락한다. 주수를 줄이거나 액면가를 낮추거나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액면감자엔 '차등'감자가 없다
일반 주주들 사이에선 '균등 감자' 방식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감자는 모든 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액면가를 80% 줄이는 균등감자다. 삼성중공업 지분 15.98%를 보유한 삼성전자나 개미 투자자나 감자 비율이 똑같다는 얘기다.
특히 액면가를 줄이는 이번 감자 방식은 구조적으로 균등감자만 가능하다. 이 방식을 선택했다는 의미는 차등감자는 실시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과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감자와 함께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추진한다. 회사 측은 "재무 건전성을 높여 그간의 실적부진에 따른 금융권의 우려를 해소하고 추가로 확보한 재원은 친환경 선박 개발과 스마트 야드 구축 등에 활용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증자는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