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미국 자동차의 상징 중 하나인 포드와 6조원 규모를 공동투자해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미국 현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 확대에 나선다. SK그룹의 방향타를 쥔 최태원 회장의 방미 중에 전격적인 협력 발표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추가 투자를 통한 미국 내 사업 확대도 기대된다.
SK-포드, 전기차 배터리 생산 '맞손'
SK이노베이션과 포드는 20일(현지시간)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블루오벌에스케이'(BlueOvalSK)’를 설립하기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합작법인을 통해 202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연간 약 60기기와트시(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셀, 모듈 등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양사는 이후 생산 확대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
법인명 블루오벌에스케이는 포드의 파란색 타원형 엠블럼인 '블루오벌'과 SK이노베이션의 SK를 합친 것이다. 블루오벌에스케이가 생산하는 60GWh는 약 100킬로와트시(kwh)의 배터리가 들어가는 전기 픽업트럭 6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합작법인은 60GWh의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약 6조원 규모를 투자할 계획이다. 양사는 세부적인 투자 비율을 확정하지 않았으나 업계는 5대 5 수준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따라 합작사에 투자하는 약 3조원, 현재 건설중인 조지아 1,2 공장 3조원 등 총 6조원의 직간접 투자 외에도 향후 시장 확대를 감안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인 포드는 전동화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자동차 기업의 하나"라며 "양사의 합작법인 설립은 SK이노베이션과 포드간의 협력을 넘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전기차 산업 밸류 체인 구축과 성장에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양사의 협력은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시점인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와 관련 방미한 상황에서 발표된 만큼 의미가 더욱 크다는 설명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전기차 배터리 분야를 자국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육성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품질 경쟁력을 널리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현재까지 한번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능뿐 아니라 안정적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며 "자회사와 계열사 등을 통해 분리막 등 배터리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협력은 테슬라와 폭스바겐 등 전기차 브랜드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눈길을 끌기도 한다. 전기차 업체들이 앞으로도 배터리 사업자와 손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현실로 구현된 셈이기 때문이다. 앞서 제너럴모터스(GM)도 LG에너지솔루션과 JV를 설립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번에 포드와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하면서 북미 전기차 생태계에서의 역할 강화는 물론, 글로벌 톱3 수준 배터리 사업자로 도약한다는 목표에 더욱 가까워졌다"며 "이 같은 방식의 협력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짐 팔리 포드 사장도 "SK이노베이션과 이번 업무 협약을 통해 향후 차별화할 수 있는 중요한 핵심 요소를 수직계열화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포드의 미래를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사는 앞으로 합작법인 설립에 필요한 최종 합의를 도출하고 인허가를 획득하는 등 제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포드 전기차 모델에 우선 장착…유럽·중국에도 활용
합작법인에서 향후 생산되는 배터리 셀과 모듈은 포드가 생산하는 다수의 순수 전기차 모델에 장착될 전망이다.
리사 드레이크 포드 북미 담당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합작법인을 통해 배터리 셀을 개발하고 양산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포드, 링컨 모델을 선택하는 고객을 위해 최적의 성능과 가치를 구현하려 한다"며 "2020년대 중반까지 포드 순수 전기차 모델의 주행거리와 가치를 증대하기 위한 배터리 생산 작업에서 SK이노베이션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는 "SK이노베이션은 이 같은 우수한 기술을 앞세워 미국의 최고 픽업트럭 평가를 받는 F-150이 전기차에서도 미국을 대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은 고밀도 니켈 배터리인 '니켈9'(니켈 함량 약 90%) 배터리를 미국 조지아에 짓고 있는 2공장에서 생산해 포드의 F-150에 납품할 방침이다.
포드가 앞서 밝힌 글로벌 순수 전기차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2030년까지 최소 240GWh의 배터리 셀 용량이 확보돼야 한다. 이는 약 10개 공장의 생산 용량을 합한 규모에 해당한다. 이 중 약 140GWh가 미국에서 소요되며, 나머지 용량은 유럽과 중국 등 다른 핵심 지역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1991년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연구를 시작으로 1996년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나선 바 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성장이 본격화된 2017년부터는 본격적인 설비 확장 투자를 시작해 2021년 현재 글로벌 총 40GWh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미국 조지아 주에 22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1, 2공장을 건설 중이며 유럽 헝가리, 중국에서도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2025년까지 125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는데, 이번 합작으로 이보다 훨씬 많은 190GWh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