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급속히 이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기차 인프라 미비, 기술적 단점, 환경 문제 등으로 시간이 걸린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 대안이 하이브리드다. 전기차가 하이브리드까지 완전히 밀어내고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을지 살펴본다. [편집자]
현대차그룹, 토요타,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는 장기적으로 100조원을 넘나드는 전기차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주요국 정부의 탄소 규제에 적극 대응하고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오는 2035년 신규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 등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가뿐 아니라 인도와 같은 신흥국도 전기차 전환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인프라 없이 전기차 홀로 성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표적인 인프라가 전기차 충전소다.
부족한 충전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부터 충전소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15년 발표한 '전기차 충전소 발전지침'에 따르면 2020년 전기차 500만대, 충전소 480만개가 목표였다. 전기차 1대당 충전소 비율을 사실상 1대 1에 달하게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목표 시점의 상황은 어떨까.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를 포함한 '신에너지차'는 492만대로 계획에 근접했으나, 충전소 규모는 168만개에 그쳤다.
한국도 이같은 미래가 예고된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는 23만8000대, 충전 인프라는 10만7000기 규모였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은 전기차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규모는 오는 2030년 약 360만대, 충전 인프라는 136만기에 그칠 전망이다. 이마저도 완속 충전기가 대부분일 것으로 예상된다.
무공해차 통합 누리집의 설명을 보면, 완속 충전기는 완충까지 4~5시간 소요된다. 운전자가 장시간 머무는 주택이나 아파트, 직장 건물에 충전기가 설치되는 이유다.
그러나 신규 건축과 함께 충전기가 설치되지 않으면 빠르고 광범위하게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렵다. 건물주, 주민 등의 이해 관계가 복잡해서다.
글로벌 시장 고르게 성장할까
충전 인프라 구축부터 난관에 봉착하면 전기차 시장은 질적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소비자들이 충전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전기차 구입을 꺼릴 수 있고, 구매 이후에도 불만이 쌓이면 전기차 이용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전기차 시장 성장이 세계 곳곳에서 고르게 진행될 것이란 낙관도 아직은 이르다. 각국의 내부 사정이 달라서다.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시장으로 평가되는 EU 권역에서도 중동부 유럽은 전기차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체코는 자동차 산업이 담당하는 고용이 50만명에 달하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소요 노동력이 작게 소요된다. 이런 까닭에 체코 산업통상부는 "전기차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체코는 대체연료 사용을 통한 내연기관차 사용 연장을 선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 다음으로 거대 시장으로 꼽히는 인도에서 지난해 팔린 전기차는 60%가량이 이륜차였다. 2027년이 되어도 4륜차 비중이 26%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다.
중국은 다른 문제가 있다. 현지 업체의 영향력이 막강해 외국 전기차가 끼어들 틈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팔린 전기·하이브리드 차 판매량 10위권에 유일하게 포함된 외산차는 테슬라였다. 한국 완성차 브랜드가 갈 수 있는 전기차 시장은 꽤 제한적인 셈이다.
안전성·폐배터리 문제도 부각
이와 함께 전기차 관련 안전성도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화재다. 이형석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소방청이 집계한 전기차 관련 화재 건수는 93건.
전기차는 배터리에 불이 나면 빠르게 번지는 특징이 있고, 전문 소화 장비로 불을 끄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완전 소화를 하는데 짧게는 2시간, 길게는 16시간 넘게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를 특수 수조에 담궈 불을 끄는 방식도 동원되는데, 이 장비가 작년 집계 당시 전국에 2대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성은 내연기관차도 완전히 담보되는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화하는 일은 인프라 영역이라는 얘기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문제도 예상된다. 크기가 상당하고 폭발성 탓에 처리가 간단하지 않아서다. 전기차가 100% 친환경적인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완성차 브랜드 일각에선 하이브리드 차량을 통해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차량은 친환경 기준을 일부 충족하면서 인프라 부족, 배터리 관련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며 "경유도 한때는 친환경이라고 했는데 정부 정책이 어느샌가 바뀐 바 있어 순수 전기차만 고집하긴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