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치통, 생리통엔?"
성인들이라면 뒤에 무슨 단어가 올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국인의 대표 두통약"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게보린'이다. 그렇다면 게보린을 만드는 회사는 어디일까? 1968년 창립해 올해로 55년째를 맞는 중견 제약사 삼진제약이다.
삼진제약은 다른 중견 제약사처럼 오리지널 의약품을 복제한 제네릭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제네릭은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회사는 지난 10여년간 정체기를 겪었다. 여전히 많은 제약사들이 제네릭에 의존하고 있지만 삼진제약은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그 변화는 2021년 12월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서울 마곡지구에 연구개발(R&D)센터를 개소하면서 본격화했다. 마곡R&D센터를 책임진 이수민 연구센터장을 만나 삼진제약 변화와 도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식약동원' 뿌리로 혁신신약 도전
삼진제약의 마곡R&D센터에 들어서니 영화에서 나오는 최첨단 미래도시 같았다. 식물이 살 수 없는 멸망한 지구의 땅 밑에서 일용할 채소를 키우는 것처럼 1층 로비에는 '수직형 스마트팜'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관람차처럼 층마다 심어진 유기농 채소들이 천천히 수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마치 신약 개발을 연상시켰다. 혁신 신약 개발에는 1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성공하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전세계 사람들의 건강을 찾아줄 수 있다.
이 센터장은 "이 스마트팜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식약동원'을 의미한다"면서 "센터 구성원들이 고품질의 유기농 채소를 일상에서 마음껏 즐기고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고품질의 의약품을 개발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삼진제약의 목표는 '혁신 신약 개발을 통한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이다. 이를 위해 회사는 2022년 3월 SK케미칼 오픈이노베이션 팀장이었던 이 센터장을 영입하고 신약 개발 R&D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봤다.
이 센터장은 "신약 개발 과제를 진행하는 데 있어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입사 후 1년여간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약 개발 과제 선정에 주력했다"고 했다.
성공 가능성이 큰 신약 개발 과제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가능성이 낮은 과제들은 신속히 중단하는 '신속의사결정'을 통해 R&D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외부와 손잡아
삼진제약은 혁신 신약 연구개발을 위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수립했다. 글로벌 빅파마에서 관심가질 만한 혁신적인 타깃을 중점적으로 선정하고 혁신신약(First-in-class) 물질을 발굴해 조기에 기술이전 하는 것이 목표다. 기업 자체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와 기술을 공유하거나 협업해 효과적인 신약 연구개발을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삼진제약은 지난 1년여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국내외 4개의 인공지능 신약개발 회사(사이클리카·심플렉스·온코빅스·인세리브로)와 표적단백질분해(TPD) 전문개발사 핀테라퓨틱스, 항체약물접합체(ADC) 전문개발사 노벨티노빌리티 등과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이 센터장은 "인공지능은 신약개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최근 신약 개발에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우리는 새로운 질병 원인 단백질을 도출했고 이에 결합할 수 있는 혁신 신약 화합물을 개발하기 해외 유명 AI 업체를 포함한 국내 주요 인공지능 업체와 공동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회사는 지난해 8월 사내에 '인 실리코(in silico)팀'을 개설하고 전문가를 고용, 자체적으로 인공지능 신약개발 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 중이다. 치료제 분야로는 암, 섬유화 질환 파이프라인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면역항암제와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개발을 핵심 목표로 세웠다.
이 센터장은 "면역항암제는 글로벌 시장 규모가 약 46조원에 달할 만큼 거대하지만 치료율이 낮은 한계가 있다. 비알코올성지방간염은 성인 4명 중 1명이 발병하고 글로벌 시장 규모도 30조원에 달하지만 개발 난이도가 높아 현재까지 FDA(미국식품의약국)에서 승인받은 치료제가 없다"고 했다.
인공지능 동원…새로운 진통제 개발도
삼진제약은 5년 뒤 기술이전(L/O) 2건을 비롯해 임상 1상 단계 과제 4개, 전임상 단계 과제 약 10개를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이후로는 2년마다 L/O 1건씩을 목표로 10년 뒤에는 L/O 총 5건과 최소 1개 이상의 시판허가 신약을 보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규 플랫폼과 모달리티(치료접근법) 연구도 동시에 진행해 10년 후에는 ADC나 TPD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규 트렌드의 플랫폼을 보유해나갈 예정이다.
이 센터장은 "삼진제약의 가장 큰 브랜드 파워이자 정체성이 '게보린'인 만큼 다양한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전의 진통제 개발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