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정민주 기자]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계 각국이 움직이고 있다. 세계 주요 완성차업계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전략을 수립했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거나 각 라인업마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는 등의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차 전환을 주축으로 삼았다.
전기차는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을 이어갔다. 성장세가 매섭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전기차 살 사람은 다 샀다"는 기사가 쏟아지더니 올해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정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대형 전기차 화재로 그나마 있던 수요까지 바닥을 친 상태다.
다가오는 2030년은 탄소중립의 중간 점검 시기다. 전기차로의 전환에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당장 실현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반이 보유하고 있는 휘발유차를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특히 '친환경 휘발유'를 투입하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 스테판 뮐러(Steffen Mueller) 교수는 "많은 차를 전기차로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서 "휘발유에 에탄올을 혼합해 휘발유차에 주유하면 지금보다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복합적인 방법을 채택해야하며, 하이브리드차를 확대하거나 에탄올 비율을 높인 휘발유를 사용해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스테판 교수는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에너지 정책 박사 학위를 취득, 현재 동 대학교에서 바이오에너지와 수송배출연구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 그룹은 미국 환경부, 아르곤 연구소 등 주요 기관과 협력한다.
지난 2018년에는 세계 주요 5개 도시에서 휘발유에 에탄올을 혼합해 주유한 차량의 이산화탄소 감축 현황을 연구하기도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휘발유에 에탄올을 혼합해 사용했을시 오존을 형성하는 탄화수소 배출이 줄었고, 심장질환과 관련있는 일산화탄소 배출도 감소했다.
뮐러 박사는 이어 "옥탄가를 높이는 데도 에탄올이 효율적"이라면서 "휘발유를 에탄올에 10~20% 정도 혼합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 국립연구소도 휘발유에 에탄올을 첨가하는 방식에 대한 이점을 강조한다. 아르곤 국립연구소는 전 세계와의 협업을 통해 에너지 혁신을 주도하고 기후에 관련한 정책 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아르곤 국립연구소 이의성 박사는 "에탄올을 첨가한 휘발유의 이점은 신차뿐 아니라 기존 차량 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전체 규모로 보면 기존 차량 연료를 대체할 때 줄어드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탄올을 혼합한다고 하면 소비자 비용 부담은 어떻게 달라질 지도 논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에탄올을 15% 혼합한 휘발유 구입가는 일반 휘발유만 구입할 때보다 10~12%정도 저렴하다"면서 "일찌감치 에탄올 혼합 휘발유를 판매한 미국은 가격 경쟁력에 많이 도달한 상태"라고 전했다.
휘발유에 에탄올을 혼합하는 방안은 국내에서도 20년 전부터 검토해 왔다. 바이오에탄올 도입 타당성평가, 차량 및 인프라 실증 평가, 에탄올 관련 기술 개발 등 다각도로 연구를 이어왔고 정책 도입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에탄올 시범 공급사업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민간 주도'로 넘긴 상태다.
그 사이 영국, 캐나다, 중국, 필리핀 등 전 세계 약 60개국에서는 에탄올 혼합 정책을 안착했다.
이 박사는 "미국 정유사들은 단순히 기름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에너지 회사'라고 생각해 친환경 전환을 고민한다"면서 "한국 정유사도 고민해야 하며, 정부는 강제하든지 도와주는 방식으로 변해가야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