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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완성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추진했던 합병 작업이 무산돼 화제였죠. 일본 내 2, 3위 기업인 두 회사는 지난해 12월 공동 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하나의 지주회사를 설립해 두 회사가 산하 기업으로 들어가는 방식의 합병을 논의한 것인데요.
혼다의 닛산 '자존심' 긁기
혼다와 닛산은 내연기관의 전통 강자지만 최근 몇 년간 전기차로의 대전환 흐름에는 제대로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 테슬라를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은 점차 확대되고, BYD(비야디) 등 중국의 신흥 자동차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죠. 이에 두 회사는 합병을 통해 전기차 관련 투자 비용을 분담하고 기술력을 공유함으로써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는데요.
하지만 결국 두 회사의 합병은 파행을 빚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러 외신을 종합하면 혼다는 처음 합병 제안 때와는 다른 거래 구조 변경을 제안했는데요. 공동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대신 주식교환을 통해 닛산이 혼다의 자회사가 되는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닛산은 모회사-자회사 체제로는 자율성이 지켜지기 어렵다며 자회사 편입 제안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닛산 경영진은 이달 초 이사회를 열고 혼다의 제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투표를 진행했는데, 12명 중 2명만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우치다 마코토 닛산 CEO(최고경영자)는 이 자리에서 혼다의 제안에 대해 "미친 짓"이라고 평가했다는 후문도 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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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유로는 각사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기술력에 대한 '자존심 대결'이 꼽힙니다. 혼다는 자회사 편입 제안과 함께 닛산에 자체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e-파워(e-POWER)' 기술을 포기하고 혼다의 시스템을 채택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회사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통합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 비용을 절감하자는 건데요. 실제 혼다는 자사의 새로운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생산 비용을 30% 낮췄다고 자신하고 있죠.
이를 두고 닛산은 자사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열등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해석해 불쾌감을 표했다고 전해지는데요. 닛산은 자존심이 긁혔겠지만, 사실 혼다의 주장이 아예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닛산의 e-파워 시스템은 주행거리연장거리전기차(EREV) 기술을 기반으로 합니다. EREV는 배터리로 주행하는 전기차인데요. 기존 하이브리드차는 엔진이 주요 동력원이지만, EREV는 전기모터를 주요 동력원으로 활용합니다. 엔진은 직접 구동에 관여하지 않고, 주행 중 배터리를 충전시켜 주행거리를 늘리는 보조 역할을 하죠.
이 방식은 주행감이 부드럽고 조용하다는 점에서 도심 주행에는 적합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닛산이 고속도로가 많은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전개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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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재개 가능성 열렸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은 각사가 이사회를 열어 합병 협의 중단을 공식적으로 결정하면서 종결 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혼다는 여전히 닛산과의 합병을 원하는 눈치인데요.
외신에 따르면 혼다는 닛산의 우치다 마코토 사장이 물러날 경우 합병 논의를 재개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우치다 사장 퇴임 이후 내부 반대를 잘 관리할 새로운 CEO(최고경영자)를 앉히면 합병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데요.
우치다 사장은 본래 닛산 내에서 혼다와의 거래를 강력히 지지해 온 인물이지만, 협상을 진행하면서 CEO 간 관계가 악화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혼다는 처음부터 경영 부진에 빠진 닛산의 경영 재건이 합병의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고 봤는데요. 닛산이 제시한 태국·북미지역 인력 감축만으로는 경영난 타개가 어렵다고 보고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강력히 요구했죠.
하지만 닛산의 구조조정은 혼다의 기대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혼다가 자회사 편입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었죠. 이에 닛산 내부에서는 우치다 사장이 혼다와의 합병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파다하다고 합니다. 닛산 이사회는 우치다 사장의 퇴임 시기를 놓고 비공식적 논의에 돌입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는데요.
급한 쪽은 닛산입니다. 혼다와의 거래가 무산된 만큼,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파트너를 구해야 하죠. 현재까지는 대만 폭스콘이나 글로벌 사모펀드 등이 물망에 오른 상태인데요. 닛산이 혼다와의 재개하게 될지, 다른 파트너와 손을 잡을지 업계 시선이 여전히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