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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800조 서남권 반도체' 딜레마…장담과 현실 사이

  • 2026.07.01(수) 15:03

삼성·SK, 서남권 800조 투자…용인과 동시 추진
정부 "전력·용수 충분" 자신감에도 공급 안정성 논란
전문가 "무리한 속도전, 두 클러스터 모두 늦춘다"
기업 투자 판단 흔드는 '정치 드라이브' 우려도

지난 6월 2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TV 생중계로 시청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가 용인과 서남권을 동시에 개발하는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초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용인 클러스터를 마무리한 뒤 서남권을 추진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직접 설득해 두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기로 약속받았다"고 밝혔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총 800조원 규모의 서남권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힘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2045년 완공이 목표인 용인 클러스터도 끝나지 않은 상황서 또 하나의 메가 클러스터를 떠받칠 전력·용수·인력 인프라를 제때 구축할 수 있느냐에 쏠립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는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산업이 아니다"라며 인프라와 시장 여건을 외면한 속도전은 용인과 서남권 모두의 사업 일정을 늦출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부 '인프라 충분' vs 업계 '검증 먼저'

대한민국 대도약 3개 메가프로젝트 주요 내용./그래픽=비즈워치

이번 메가프로젝트의 핵심은 서남권을 용인에 이은 '제2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는 겁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총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4기를 건설하고 AI 데이터센터까지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 정부는 이에 맞춰 전력과 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실 내 전담 조직을 설치해 사업을 직접 관리하고 반도체 특별법을 활용해 지방 투자에 필요한 전력·용수 인프라를 지원하겠다는 방안입니다. 정주 여건도 수도권 수준으로 개선해 기업들의 인력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죠. 민형배 전남광주특별시장 당선인 역시 "정부 통합지원금 20조원을 필요하면 모두 투입해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했고요.

정부가 가장 자신감을 보인 분야는 전력과 용수입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서남권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6.3GW의 전력과 하루 65만톤의 용수를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며 "그 이상의 전력과 용수도 미리 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약 15GW의 전력과 하루 150만톤의 용수를 적기에 공급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장관은 영산강·섬진강 유역 7개 댐에 약 15억톤의 물이 저장돼 있으며, 일부 수계 조정과 여유 용량 활용을 통해 하루 100만톤 이상의 산업용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도 댐 여유량과 수계 조정·발전용수·농업용수·하수 재이용 등을 활용하면 서남권 용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죠.

하지만 정부 장담과 달리 장기적인 산업용수 확보를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스스로도 불과 1년 전 산업시설 증가에 따른 물 부족을 공식 전망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현 기후부)는 지난해 발표한 '제1차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에서 산업시설 증가와 기존 댐의 여유량 감소 등을 이유로 장래 연간 7억4000만톤의 생활·공업용수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용인 반도체 첨단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용수 수요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고요.

여기에 서남권 반도체 팹 4기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까지 추가되면 물 수요는 정부의 당시 전망을 넘어설 가능성이 큽니다. 호남에 계획된 반도체 공장 4기를 가동하는 데만 하루 약 54만8000톤의 산업용수가 필요한데요. AI 데이터센터 역시 냉각을 위해 막대한 용수를 사용하는 만큼 영산강·섬진강 수계만으로 장기적인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숫집에서 국수 뽑나"

전력 공급 역시 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6.3GW 규모의 전력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한빛원전 등을 활용해 공급, 발전소와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송전망도 조기에 구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업계선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단 한순간도 전력이 끊겨서는 안 되는 시설인 만큼 출력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를 보완할 원자력 발전소나 LNG 발전·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송전망 구축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원전 건설만 해도 통상 9~10년이 걸립니다. 정부가 '적기 공급'을 약속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력을 확보하고 송전망을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실행계획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용인과 서남권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현실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청사진"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전력과 용수가 충분하다고 설명하지만 정작 기업이 투자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며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전력·용수·인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지가 제시되지 않는 한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정부가 용인과 서남권 클러스터를 동시 추진하고 임기 내 성과까지 거론하는 데 대해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는데요. 이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당초 2045년 완공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조성되는 초대형 사업인데 완공 시점을 12년 앞당기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과제"라며 "반도체 팹은 한꺼번에 여러 기를 짓는 것이 아니라 시황과 수요를 보면서 1기-2기-3기 순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업황이 악화됐던 2022~2023년에는 감산과 함께 신규 팹 투자 속도를 늦추거나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평택 공사와 미국 테일러 공장 장비 반입을 미뤘고 이후 AI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자 다시 투자를 재개했죠. 

이에 그는 "반도체 공장은 국숫집에서 국수 뽑듯 '3~4년 안에 결과를 내자'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AI 호황이 이어질지, 메모리 시황이 어떻게 바뀔지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동시 추진이 오히려 두 프로젝트 모두의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기업의 투자 여력과 인력·장비·시공 역량은 무한하지 않다"며 "한정된 자원을 두 클러스터에 동시 투입하면 용인 클러스터의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은 물론, 서남권 역시 기대했던 만큼 속도를 내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가 정말 속도를 내고 싶다면 기업을 먼저 부를 것이 아니라 전력과 용수 인프라를 선구축해 투자 불확실성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삼성 및 SK 메가프로젝트 총 투자 규모./그래픽=비즈워치

"정치 일정이 투자 판단 흔들어선 안돼"

전력·용수 못지않게 인력 확보 역시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힙니다. 석·박사급 고급 인력은 현재 용인·평택조차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남권에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수도권과 지방 간 인력 확보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입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대기업보다 협력사와 소부장 기업의 인력난이 더 심각할 수 있다"며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계약학과 등을 통해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수도권 인력이 장기간 정착할 수 있는 교육·주거 여건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선 정치적 목표가 기업의 투자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AI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정부가 세제와 인프라 지원에 나서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반도체 투자는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산업인 만큼 정치 일정에 맞춰 속도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교수는 "정부가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기업 투자를 앞당기려 하면 시장 원칙을 훼손하고 투자 판단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며 "무리한 착공은 공급 과잉 국면과 맞물려 결국 기업의 재무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기업들도 정부 발표와는 별개로 투자 계획의 변동 가능성을 공시했는데요. SK하이닉스는 1일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정정 공시하며 "구체적인 투자 일정과 규모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주요 고객사 투자 계획·재무 여건·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인허가 및 인프라 구축 협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생산시설 확충 시점에 수요가 둔화하면 공급 과잉으로 재무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투자 위험도 함께 제시했고요.

앞서 삼성전자도 2655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비전을 정정 공시하며 "중장기 투자 계획은 현재 시황에 근거한 가이드라인으로 향후 시장 상황과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명시했죠.

결국 이번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실행력'에 달렸다는 평가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정부 선언이 아니라 투자가 가능한 환경을 언제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간표입니다.

기업들마저 투자 일정과 규모가 시장 상황·인프라 구축·인허가 진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용인-서남권 클러스터 동시 추진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기반시설 구축 속도가 가를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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