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LG투자증권(NH투자증권의 전신)을 시작으로 지난 25년간 재직한 증권사들을 한손으로 꼽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이 남자. 한화투자증권의 기업금융(IB) 본부 산하 주식자본시장(ECM)을 이끄는 유형권 센터장 얘기다.
한화투자증권의 IB 본부는 회사가 올 1분기까지 9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는데 자산관리(WM) 본부와 함께 효자 노릇을 한 사업부다. 유 센터장이 맡고 있는 ECM은 채권발행(DCM)과 함께 IB 본부의 성장을 이끄는 쌍두마차 같은 조직이다.
유 센터장은 지난 2014년 한화투자증권으로 넘어온 이후 알짜기업들의 기업공개(IPO)와 지분투자 등을 성사시켰다. 한화투자증권 ECM의 잇따른 승전보에는 유 센터장의 숨어 있는 노력이 있었다.
한화투자증권에 영입되기 전에 수천억원 규모의 기업 매각 주선이나 자금조달 등 굵직굵직한 딜을 따냈다. 대표적으로 중견 의류업체 약진통산을 지난 2014년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에 무려 2048억원에 매각한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한화투자증권 사옥에서 만난 유 센터장은 성장성이 높은 '진흙 속 진주' 기업을 발굴하는 데 이채로운 이력이 한몫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고 1994년 LG그룹 해외공채로 옛 LG투자증권 국제금융팀에 입사했다. 당시 외국계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던 국내 기업의 전환사채(CB)와 BW(신주인수권사채) 등 메자닌 채권 발행 업무를 담당했다.
2005년 LG증권이 옛 우리투자증권과 합병한 그해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후 교보와 하나대투(현 하나금융투자)·이트레이드 등 주요 증권사를 차례로 거쳤다. 이때 쌓은 인맥이 든든한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6년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와 합병으로 코스닥에 상장시킨 디알텍은 사회 초년병 시절인 LG투자증권의 인맥으로 발굴한 기업이다.
디알텍은 디지털 엑스레이를 촬영하는데 핵심 장치인 평판형(FP) 디지털 X선 디텍터를 독자기술로 개발해 세계에 수출하는 회사다. '디지털 엑스레이 디텍터'란 엑스레이 영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꿔 저장할 수 있는 장치다. 아날로그보다 훨씬 선명하고 깔끔한 영상을 구현한다.
디알텍은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선도기업 지멘스가 관심을 보일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와 대표이사 등이 LG 계열사 LG디스플레이 연구원 출신이자 TFT-LCD 영상 분야의 전문가다.
유 센터장은 "디알텍은 기술력은 좋지만 사업 초기 자금 문제로 어려워해서 스팩과 합병을 통한 상장을 권유했다"라며 "상장으로 100억원의 자금을 모아 부채를 메웠고 이후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곧바로 150억원 규모 CB 발행을 주선했다"고 말했다.
CB와 BW로 총 6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주선한 바이오 기업 메지온은 10여년 전 삼성증권 IB사업본부 재직 시절 상사가 소개해준 회사다. 메지온의 오너는 한인 1세대 금융 전문가로 예일대를 졸업해 메릴린치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약한 박동현 회장이다.
원래 메지온은 비아그라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만들었다. 그런데 관련 약이 심장 희귀병 환자의 혈관을 탄력있게 유지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희귀의약품 신약개발로 방향을 돌렸다.
현재 이 회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국내 업체 가운데 최초로 희귀의약품 허가를 앞두고 있다. 투자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시가총액은 현재 1조원에 육박한다.
무려 2000억원 이상의 몸값을 매겨 세계최대 사모펀드 가운데 하나인 칼라일 그룹에 지분을 매각한 약진통상은 다름아닌 유 센터장 지인의 아버지 회사다.
약진통상은 지난 1978년 조영태 회장이 설립한 의료 제조사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으며 갭(GAP)과 바나나 리퍼블릭 등 세계적 의류 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유 센터장은 "약진통상은 해외 공장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패션 의류를 제조해 주로 유럽 시장에 내다파는 회사"라며 "칼라일과의 좋은 인맥을 통해 약진통상의 밸류에이션을 높게 평가받은 사례"라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국내 보다 해외로 눈을 돌려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 발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지난 수년간 투자 다변화를 위한 운용역량 확보 노력을 꾸준히 실시해 왔다”며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미래 수익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은 해외 투자섹터에 대한 투자비중 확대로 이어졌고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높은 자산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추세는 보다 다양한 미국 대체투자 수요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자금조달 프로그램 개발에 역량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유 센터장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경기회복 추세가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며 "국내 투자자들이 선제적인 위치를 점유할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펀드 개발에 힘을 쓰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