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유상증자 중점심사 대상 1호인 삼성SDI가 증권신고서를 자진해서 수정 제출했다. 여전히 유상증자 당위성이나 세부 사용 계획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의 옹호 발언과 더불어 공식적인 정정요구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장에선 무난한 심사 통과를 예상하고 있다.
반면 중점심사 2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금감원으로부터 중점심사 결과 유상증자 당위성과 주주소통 내용을 충분히 기재하라며 정정 요구를 받았다. 자금 사용계획과 증자 발표 시점을 둘러싼 시장 안팎의 논란을 감안한 것으로 읽힌다.

정정요구 피한 삼성SDI, 금감원 심사 무난히 통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 24일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정정 제출했다. 가장 큰 목적은 자금조달일자를 조율하기 위함이다. 정정한 신고서에 따르면 신주 상장예정일이 기존 6월19일에서 6월13일로 앞당겼다. 이는 분기보고서를 서둘러 내기로 하면서다. 원래 1분기 보고서는 5월15일까지인데 삼성SDI는 제출일을 5월9일로 계획했다가 4월30일로 당겼다. 정정한 신고서의 효력발생기일은 4월8일이다.
정정 신고서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건 '자금의 사용목적'이다. 금감원이 중점심사시 눈 여겨 보겠다고 한 △유상증자 당위성 △이사회 논의 내용 △주주 소통계획 등이 모두 이 항목에 들어있다.
삼성SDI는 유상증자 추진 배경에 "금융기관 차입, 회사채 발행 등을 검토했으나, 대규모 차입이 지속될 경우 회사 재무건전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중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을 상환만기가 존재하는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할 경우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또 주주권익 보호를 위해 지난 1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소통을 노력했다는 내용과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외형 성장과 이익률을 개선한 다음 2028~2030년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금감원은 정정한 내용을 위주로 재심사에 돌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정한 내용을 다시 확인해봐야 하기 때문에 심사가 끝난 건 아니다"라며 "중점심사에 필요한 부분은 이미 다 봤기 때문에 수정사항 위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정한 내용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SDI는 다른 방법이 아닌 유상증자를 택한 사유로 대출이나 채권 발행은 만기가 있어 상환 압박이 크다는 점만 언급했다. 그러나 당초 시장이 지적한 보유자산 활용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삼성SDI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15.2%)을 포함해 에스원(11%), 호텔신라(0.1%) 등 계열사 지분을 들고 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지난 17일 삼성SDI를 다룬 보고서에서 "보유 중인 매각 가능한 자산이 있음에도 자기자본 펀딩 방식을 취한 점은 주식투자자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금감원의 압박으로 결국 유상증자 규모를 대폭 줄인 이수페타시스와 비교해봐도 내용이 미흡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수페타시스는 2차전지 소재회사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5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시도했으나, 거듭되는 당국의 퇴짜에 결국 인수 계획을 접고 증자 규모도 3400억원으로 줄였다. 자금사용목적을 기술한 분량을 비교해보면 이수페타시스가 작년 11월 최초로 제출한 증권신고서의 해당 부분은 15장에 달하는 반면, 삼성SDI는 9장 뿐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주로 투자위험요소나 자금의 사용목적을 까다롭게 보는데 삼성SDI는 2조원이나 조달하면서 사용 계획 기술이 부족하다"며 "해외법인 합작 투자 등은 비밀유지계약(NDA) 때문에 자세히 쓰는데 제약이 있었겠지만 규모에 비해 너무 설명이 간략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무난한 통과를 예상하고 있다. 금감원와의 교감을 마친 후인 만큼, 회사가 정정 신고서에 금감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했을 것이란 전망이다. 공식적으로 정정요구를 받지 않고 자진 정정에 그친 것은 지적사항이 별로 없거나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예상대로'라는 시각도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공식석상에서 삼성SDI 유상증자에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당시 중점심사 제도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길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중점심사제는 투자자 관심이 높은 유증에 대해 정보 충분히 알리는 데에 초점이고 금감원이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시장 불확실성 해소하고 정보만 투명하다만 기업이 신속한 자금조달 받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 이니셔티브 관련 리더십 보여주고 있는데 당국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정정요구 받은 한화에어로, 시장 설득할 수 있을까
한편, 비슷한 시기 금감원의 집중심사를 받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7일 공식적으로 정정요구를 받아 삼성SDI에 비해 험난한 길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정정요구 이유로 "유상증자의 당위성, 주주소통 절차, 자금사용 목적 등에서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기재가 미흡하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출한 신고서에서 시장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건 자금의 사용 기한이다. 회사는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시설투자와 타법인증권 취득하는데 쓰겠다고 했지만 최대 2030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에 활용하겠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제기되고 있다.
변용진 아이엠증권 연구원은 "회사가 제시한 투자계획은 2030년까지이며 5년이라는 기간을 감안하면, 향후 유입될 현금에 더해 회사채 발행도 적정 규모로 병행했다면 유증 규모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간 투자 목표액은 한 해에 2조원을 초과하지 않기에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을 상회하는 이익체력만으로 가능했을 것"이라고 봤다.
특히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시점에 증자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총수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사회 결의 전날(3월19일)을 기준일로 삼아 기준일 종가와 최근 1개월 평균주가, 최근 1주일 평균주가 중 낮은 가격에 15%의 할인율을 적용해 예정발행가액을 60만5000원으로 계산했다. 이는 작년 말 32만6000원으로 거래를 마친 주가가 방산 테마를 타고 3월 중순 70만원대로 급등한 덕분이다.
주가가 높을 때 유상증자를 실시하면 시장에서 더 많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반면 주가에 주는 충격도 적지 않다. 앞으로 회사는 신주배정기준일을 기준으로 1차 발행가액과 구주주 청약개시일을 기준으로 2차 발행가액을 계산해보고 둘 중 더 낮은 가격으로 발행가액을 확정할 방침이다.
또한 회사가 증자 발표 전 시간외 매매로 한화에너지, 한화에너지 싱가포르법인, 한화임팩트파트너스로부터 한화오션 지분을 1조3000억원어치를 사들인 점도 비판대에 올랐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이며, 한화임팩트파트너스의 사실상 최대주주다. 주주들은 총수일가 지분정리에 현금을 소진한 뒤 정작 사업 추진에선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3형제 승계와 관련 정리를 빨리 끝내고 싶어한다"며 "탄핵 선고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기 전 자금조달도 서두르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