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총회 이전에 갑자기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에 대해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채 발행이 가장 좋은 방법일 거 같은데,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물어보러 왔습니다."
25일 경기도 성남시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 김지호 씨의 말이다. 이날 주총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이뤄져 관심을 모았다.
3.6조 유상증자 "최선의 선택"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작년 최대 실적을 낸 데다 현금도 두둑한 상태라, 유상증자로 자본을 조달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상증자는 통상 주식 발행을 늘려 기존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주가에 악재로 평가된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3750억원이다.
김 씨는 "회사가 유증 이유에 대해 해외 공장 부지 건설 자금과 해외 방산업체 인수 자금 등을 공시했는데, 에비타(EBITDA)가 1조원이 넘는 회사에서 2~3년만 버티면 충분히 자금을 회수할 것 같은데 (유상증자 결정은) 굉장히 아쉽다"고 일갈했다.
또 "주총에서 유상증자를 협의했으면 좋았을 텐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전에 시장과 좀 더 소통하는 모습이 필요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를 의식하듯 이날 주총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결정 배경 설명에 시간을 할애하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해외 입찰을 위해 부채비율을 관리하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단기간에 집행하려면 유상증자가 최적의 방안"이라며 "유럽연합의 군수품 역내 조달 등 이른바 '유럽 방산 블록화'와 선진국 경쟁 방산업체들의 견제를 뛰어넘기 위해 현지 대규모 신속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상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IR 담당 임원(전무)도 주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해외 투자하거나 수주할 때 고객사나 파트너가 중요하게 보는 게 부채비율"이라며 "성장 투자를 더 유지하려면 차입으로 조달하는 건 사업 자체도 기회 줄어들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유상증자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성장 위한 투자 우선"
일반적으로 무기는 최소 30년 이상 사용하기 때문에 방산제품 공급회사는 입찰에서 신용평가 등급과 재무정보가 중요한 편이다. 오랜 기간 유지 보수가 가능하도록 문제없이 운영되는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차입 대신 유상증자를 선택한 이유다.
손 대표는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차입 등의 방식으로 단기간에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최근 빠르게 회복하는 유럽 방산업체와의 입찰 경쟁에서 불리해 유상증자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만약 3조6000억원을 차입으로 조달해 투자를 진행했다면, 3년 동안 부채비율이 100%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작년 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부채비율은 281.3%로 적정선(200%)보다 높은 수준이다.
다만 이는 단기간의 급성장과 선수금이 부채로 잡히는 회계방식 탓이다. 선수금은 납품계약을 맺고 미리 지급 받은 돈으로, 회계상 부채로 분류된다. 지난해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총 부채(31조9726억원) 중 선수금은 42.7%인 13조6479억원에 달한다.
이날 한상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IR 담당 임원(전무)은 "부채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수주 규모가 2021년 5조원에서 작년 32조원으로 6배 늘어난 것 때문"이라며 "수주를 하게 되면 선수금을 10~20% 받게 되는데 이 부분이 누적돼 현재 부채의 절반 정도가 선수금"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가치 상승으로 보답" 약속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3조6000억원의 자금을 해외 방산 거점 및 조선소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방산 블록화와 미국의 해양방산 및 조선해양 산업 복원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나아가 오는 2035년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투자를 통해 외형성장에 성공할 경우 주주환원도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한 전무는 "투자를 통해 현금 흐름이 성장하면 이 부분도 주주환원에 쓸 계획"이라며 "주주들이 가장 원하는 주주환원은 주가 상승이기 때문에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를 확대해 성장으로 이어지면 주주들에게 더 큰 기업 가치로 보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상증자 전 시장에 미리 소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서는 "유상증자가 결정되고 보안이 잘 유지돼 주가가 하루 급락하고 어제 많이 회복했다"며 "이런 부분이 성장 투자를 위해 유상증자를 했을 때 바람직한 소통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상증자 발표 다음 날인 2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13% 떨어졌고, 그룹 주식도 동반하락했다. 이에 김동관 전략부문 대표이사(30억원)을 비롯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최고 경영진은 48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진화에 나선 바 있다.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 소식에 주가는 4.6% 올랐지만, 지속 약세가 이어져 이날도 3.11% 내린 65만4000원으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