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현 경영진과 카카오가 맺은 계약 내용이 공개되면서 경영권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시장에는 카카오가 이번 계약으로 신주 우선 협상권과 핵심사업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확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간 카카오가 전략적 파트너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온 에스엠 이사회 측 주장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이사회 측은 이 계약 내용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수만 전 총괄 측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대등하지 않은 거래라고 주장한 한편, 이사회 측은 수평적 거래라고 반론했다. 이 가운데 에스엠의 최대주주 하이브는 현 경영진을 향해 법적 조치를 시사해 분쟁의 소음이 커질 전망이다.
이사회가 카카오에 준 신주우선권.. "불합리" vs "일반적 딜"
에스엠 이사회가 카카오와 맺은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 계약서에 따르면, 에스엠이 향후 추가로 3자 배정방식의 신주 배정이나 주식연계채권 발행 시 카카오에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지난 22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심리에서 이수만 전 총괄 측은 카카오의 신주, 전환사채 인수 목적이 경영권 취득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이를 근거로 제시했다. 카카오가 에스엠이 발행할 신주와 전환사채를 인수하면 지분율이 9.05%인데, 향후 신주발행때도 우선권을 가지면 9%대에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지분을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약은 다른주주의 이익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기된다. 이수만 전 총괄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 소속 안상현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침해해놓고 나중에 (신주, 주식연계채권을) 발행할 때 먼저 카카오에 진행하라는 내용"이라며 "지극히 불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런 계약을 맺은 이사회 측은 회사가 신규 투자자에게 이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 '일반적인 거래'라고 반론했다. 이사회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광장의 정다주 변호사는 "투자자가 신규 투자에 관해 우선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며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협상권이 회사에 주식 발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우선협상권이 있더라도 카카오가 에스엠에 추후 제3자 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카카오를 우선적으로 고려해달라는 요구일 뿐"이라며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거래할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금투업계서도 "신주 우선협상권 부여, 이례적"
시장에서는 투자회사에 신주 우선협상권을 준 것 자체가 '이례적인 경우'라고 봤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추후 신주 발행에 대해 우선권을 부여하는 계약에 대해 "회사 자금 상황이나 성장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3자배정 유상증자를 할 때 일반적으로 붙는 조항은 아니다"라며 "발행사 입장에서 자금 유치를 위해 그러한 조항을 넣는 것을 선호하지만 보통 투자하는 회사 입장에서 굳이 요청해서 넣고 싶어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투자회사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 주식연계채권 뿐 아니라, 보통주를 확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지분율 확대 의도를 의심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주식연계채권을 인수하면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이자를 수취할 수 있다. 반면, 보통주는 주가 하락 우려가 있어 투자회사가 짊어질 리스크가 보다 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나중에 메자닌(주식연계채권)에 들어가기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보통주를 취득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라고 전했다.
핵심사업 넘겼다? "대등하지 않은 거래" vs "동등 거래"
신주발행 우선권 외에도 쟁점은 또 있다.
에스엠 이사회와 카카오가 체결한 사업협력 계약서에는 에스엠의 핵심 사업인 국내 음원, 음반 유통의 배타적 권리를 카카오의 계열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넘기기로 한 내용이 담겼다. 또 해외 음반, 음원 유통과 콘서트·팬미팅 티켓 유통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수만 전 총괄 측은 카카오에 과도한 권한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상현 변호사는 "양사가 대등한 관계에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라며 "자세한 입장은 서면에 담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사회 측은 에스엠이 가져오는 권리도 상당하다는 주장이다. 2200억원 상당의 자금 조달과 카카오의 온라인 플랫폼 활용, 미국·유럽 지역 진출 인프라 지원 등을 꼽았다.
이사회 측 정다주 변호사는 "카카오는 에스엠에 플랫폼과 해외 인프라를, 에스엠은 카카오에 아티스트와 IP를 주는 거래"라며 "다만 딜의 방식이 신주 발행을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상 주주로 참여하는 형태를 띄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이브, 에스엠 이사회에 법적대응 시사
한편 이수만 전 총괄의 지분을 가져와 에스엠 1대주주 자리에 오른 하이브는 이사회를 향해 법적대응을 시사했다.
에스엠 이사회가 카카오에게 준 신주 우선협상권은 추후 새로운 전략적 투자자를 받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물론, 사실상 카카오가 에스엠의 경영권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란게 하이브 측 주장이다.
아울러 사업협력에 대해서도 에스엠이 중요한 사업 권리를 넘기는 반면, 에스엠이 받는 권리는 에스엠 자회사인 에스엠라이프디자인을 통한 음반생산, 뮤비 촬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이번 계약이 담고 있는 법적인 문제들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민⋅형사상의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엠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가운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는 3월 초에 나올 전망이다. 에스엠 이사회와 하이브는 각각 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내달 31일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