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한 전 세계 은행 위기설이 각국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수면 아래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긴축 강화를 시사하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융시장의 불안을 고려해 금리 인상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자 시장 분위기는 확연히 밝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반도체 경기를 둘러싸고선 바닥 탈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마이크론의 부진한 실적이 오히려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에 힘을 불어넣은 모양새다.
금융 불안 일단 '진화'…슬로모션 위기 경고도
SVB 파산과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의 유동성 부족 후폭풍으로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던 금융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스위스 1위 은행인 UBS가 CS를 인수한 데 이어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SVB는 165억달러(약 21조4200억원)에 퍼스트 시티즌스 뱅크셰어스 품으로 들어갔다.
독일 도이체방크 위기설이 잠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으나 은행과 금융시스템을 둘러싼 우려가 극에 달했던 몇 주 전과 비교하면 분명 분위기는 나아졌다. 적어도 일부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진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방어를 목적으로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연준이 은행 사태의 진행 상황을 감안해 긴축 통화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시장의 불안이 완화하고 있다. 미국의 4분기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보다 소폭 하향 조정된 점도 금리 인상의 명분을 약화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하긴 이르다.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슈왑이 채권 미실현손실에 따른 우려로 흔들리고 있다. 증권가는 찰스슈왑 사태가 SVB 파산과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금융주 전반의 위기감이 또다시 고조될 여지는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가 급한 불은 껐지만 또 다른 유형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레그 입 WSJ 수석 경제논설위원은 "천천히 진행되면서 서서히 시스템을 갉아먹는 슬로모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슬로모션 위기로 인해 은행이 파산하거나 영업이 축소돼 신용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황 바닥 쳤나
부진을 이어가던 반도체 업황을 둘러싸고 조금씩 긍정적인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20년 만에 사상 최대 분기 적자를 기록하고 난 이후부터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2023 회계연도 2분기(2022년 12월~2023년 2월) 영업손실이 23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매출액 역시 53% 줄어든 37억달러에 그쳤다. 매출액은 시장 예상치와 비슷했지만 영업손실은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반도체 업종 주가는 되레 동반 상승했다. 마이크론이 실적 발표 이후 고객 재고가 개선되고 있고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증가로 향후 반도체 업황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놨기 때문이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전자제품 제조업체와 기술회사들의 구매 감축으로 급증했던 재고 문제가 2분기에 정점에 이르렀다"며 "매출이 순차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망을 두고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반도체 업황 회복 전망은 기술주 전반의 투자심리 개선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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