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집행할 때 명확한 기준 없이 취급, 연장, 자문 등 다양한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아낸 정황이 드러났다. 건설사에게 수수료 반환을 절대 요구할 수 없도록 불리한 계약 조건을 내민 갑질도 포착됐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를 위법은 아닐지라도 불합리한 관행이라고 판단했다. 업계와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3분기까지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와 별개로 개인 회사를 통해 용역 수수료를 빼돌린 사적이익 추구행위에 대해선 검찰 고발 조치했다.
수수료 산정 기준 없고, 불리한 계약조건 넣기도
금융감독원은 26일 부동산PF 수수료 점검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금감원은 건설사들로부터 PF 수수료 부과시 불합리한 업무관행이 있다는 내용의 민원을 받아 3~4월 PF 취급 비중이 높은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점검에 착수했다.
검사를 받은 회사는 증권사 3곳, 여전사 2곳, 보험사 2곳 등 총 총 7군데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다올투자증권, 메리츠캐피탈, OK캐피탈, 메리츠화재 등이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보는 브리핑에서 "대출건수가 많거나 대출 취급 금액이 많은 곳 또는 계열이 함께 대주단으로 참여하는 곳 등 다양한 케이스를 고려해 점검대상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통상 금융회사는 시공사에 PF 대출을 내줄 때 대출이자 외에 다양한 명목으로 용역 수수료를 받아간다. 대출 건에 대한 취급수수료, 대출약정 기간 중 중도상환시 받는 수수료, 자문수수료 등이 예시다. 금융회사가 수수료 항목과 수수료율을 제시하면 대주단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금감원이 문제 삼은 지점은 금융사가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시행사에게 수수료를 과하게 수취한 관행이다.
검사 결과 금융회사들은 PF 자문, 주선 등 용역 수수료를 정할 때 산정기준이나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 관련 계약금·잔금 대출 등 고위험 대출을 집행할 땐 대출위험 부담에 따른 대가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
아울러 자금을 빌리는 차주인 건설사에게 불리한 계약 조건을 부과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차주가 대출금을 만기 전 조기 상환하더라도 선급이자를 반환받지 못하는 등 차주가 어떠한 경우에도 수수료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을 계약에 넣었다.
대출을 처음 취급할 땐 이자율 상한을 점검하는데 만기연장이나 조기상환의 경우 이자, 수수료 변동에 따른 한도 준수 여부를 점검하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
아울러 수수료를 수취할때 실적이나 증빙, 관계자 간 업무협의 기록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
또 차주에게 수수료 산정기준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금융용역과 관련된 주요 결과보고서도 제공하지 않았다.위법 여부에 대해선 "법률 검토 필요"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사례들을 대부업법 위반이라고 보고, 제재를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선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황선오 부원장보는 "금융회사들도 법정 최고이자율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다"며 "다만 내부통제가 취약하다보니깐 중도상환시 최고 이자율 상한을 넘겼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잘 안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에서 법 위반이 있을 수 있는데 법률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라 현재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향후 PF 수수료 투명성 제고를 위한 TF를 꾸리기로 했다. 금융업권과 건설업계, 시장전문가 등으로 구성해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3분기 안으로 제도개선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협회 모범규준에 반영해 각 업권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할 방침이다.
개선안에는 수수료 항목 분류 및 정의, 수수료 부과원칙 및 산정절차 마련, 차주에 대한 정보 제공절차 도입, 금융회사 내부통제 절차 강화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황선오 부원장보는 TF와 관련해 "법규 위반이 아닐지라도 분명 합리성이 결여된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범위 내 개선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황 부원장보는 '사적계약에 관해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법정최고이자율을 벗어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이자가 과도한지 판단해 시장 가격에 개입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수수료 산정 방식이나 절차에 있어 사회통념상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라며 개입 지적에 선을 그었다.
또한 황 부원장보는 '이번 검사가 정부의 PF 연착륙 대책의 일환인지'에 대해선 "사업장 사업성 평가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개인회사 통해 용역 수수료 수취, 검찰 고발
금감원은 PF 수수료 부과 관행과 별도로 불법이 의심되는 행위도 적발했다. 검사를 받은 7개사 중 한 곳인 A사 임직원은 PF 용역이 회사 계약임에도 본인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수억원의 용역 수수료를 받아갔다. 금감원은 위법 소지가 높다고 판단해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이른바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강제로 예금을 가입시키는 '꺾기' 사례도 적발했다. B사는 후순위 대출을 연장해줄 때 대출금 상환계좌가 아닌 후순위 대주가 정하는 별도 계좌에 수억원을 예치하도록 변경 약정을 체결했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구속성예금 수취'로 볼 여지가 있는지 법률을 검토 중이다.
김진석 금감원 금융투자검사1국 국장은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에 일부 금융회사의 문제가 된 행위가 있었다"며 "금융회사의 일반적인 행위나 양태로 확대해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