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생:서로 북돋우며 다같이 잘 살아감
기업들은 늘 '상생'을 외칩니다. 대기업은 중견기업을 돕고, 중견기업은 소상공인을 돕는다고 늘 이야기하죠. 실제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따뜻한 마음도 있겠지만 그들이 살아남아야 우리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계산도 서 있을 겁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도움은 도움입니다.
소상공인과의 거래가 많은 유통업계는 특히 '상생'이라는 표현이 자주 인용되는 업계입니다. 기업들이 거래하는 곳이 대부분 소규모 농어민이거나 소기업, 자영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갑질 이슈가 대기업도 휘청이게 할 수 있는 시대에는 이들에 대한 대우가 곧 그 기업의 도덕성으로 평가됩니다.

상생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쉽고 눈에 띄는 방법은 역시나 현금 지원입니다. 수수료율을 낮추거나 판매 인센티브를 늘리는 식입니다. 효과도 즉각적입니다. 이보다 눈에 덜 띄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겁니다. 안 팔릴 물건을 사 주거나, 반대로 잘 팔릴 것 같은 제품을 육성해 주며 판매자로서의 가치를 높여 주는 방식입니다.
쿠팡과 컬리는 국내 이커머스 신선식품 시장의 선두 주자입니다. 그런 만큼 늘 어려운 농어촌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그만큼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또 두 기업의 '돕는 방식'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두 기업이 가진 정체성이 두 기업의 '상생'에서도 드러납니다.
전국에 '못난이 과일' 뿌린다
지난 12일 쿠팡은 지방 농가가 생산한 감귤과 딸기 등 과일 1000톤을 매입해 할인 판매한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설이 이르게 찾아온 탓에 설 이후 판매 부진에 빠진 과일 농가를 돕기 위한 행보입니다. 통계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설 연휴 이후 과일 소비량은 평월 대비 15~20% 감소했습니다. 특히 딸기·감귤·사과 등 대표 과일 매출이 30% 넘게 줄었죠. 쿠팡이 과일 매입에 나선 이유입니다. 지난해 이맘 때 매입한 과일이 580톤이라 하니 배 가까이 물량을 늘린 셈입니다.
안 팔리는 과일을 무작정 사서 창고에 쟁여 놓는다고 "잘 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겁니다. 매입한 과일은 결국 더 저렴하게 팔아야 팔립니다. 쿠팡은 시중가 대비 최대 46% 할인된 가격으로 사과와 참외, 딸기 등을 판매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농가는 안 팔릴 과일을 팔아서 좋고, 소비자는 과일을 싸게 구매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원을 받은 농가들도 한 숨을 돌렸습니다. 쿠팡이 대량 매입에 나설 때마다 수백 수천 농가가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여유를 얻습니다. 쿠팡이 과일을 대량 매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체로 과일·채소 판매가 부진한 명절 직후에 매입에 나서는 편입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10월에도 폭염과 이른 추석으로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던 과일 600톤을 매입해 할인 판매했고요. 그 달 말에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 잘 안 팔리는 못난이 채소 370톤을 매입했습니다.
쿠팡이 이같은 '물량 작전'을 펼치는 건 쿠팡의 최대 장점인 전국에 퍼진 물류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농가나 단위 농협으로는 불가능한 수백톤의 물량을 단숨에 처리할 수 있는 게 쿠팡의 로켓배송입니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쿠팡은 물류센터 부지 면적 기준으로 CJ대한통운을 넘어선 국내 1위 물류 기업입니다. 전국 시군구 260곳 중 70%인 182곳이 '쿠세권'입니다. 쿠팡의 농가 지원은 곧 로켓배송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예시가 되는 셈입니다.
예쁘고 귀한 놈만 모십니다
반면 컬리의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컬리도 내로라할 만한 물류망을 전국에 구축했지만 쿠팡과 비교할 수준은 아닙니다. 컬리의 장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MD들의 고도화된 큐레이션 능력과 이렇게 발굴한 상품을 띄우는 마케팅 능력입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희소가치 프로젝트'입니다. 희소가치 프로젝트는 품종, 생산환경, 생산과정이 특별한 식재료를 발굴해 판매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희귀한 품종의 과일이나 해외에선 인기있지만 국내에선 잘 재배하지 않는 품종, 기존 제품들과 차별화된 맛을 보유한 제품 등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이 희소가치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목 있는 생산자입니다. 품질은 우수하지만 여러 이유로 재배를 꺼리는 품종을 찾아 뚝심있게 길러온 '장인'이 있어야 합니다. 컬리의 역할은 이런 장인을 찾고 그들이 안정적으로 생산을 이어갈 수 있게 돕는 일입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어련히 잘 팔리려니 싶지만 실제론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상품은 내용물만큼이나 포장도 중요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품종은 판로 개척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농사는 잘 짓지만 장사나 마케팅엔 어려움을 겪는 생산자도 많죠. 컬리는 '포장의 장인'입니다.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 컬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의 상생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결식 아동이 안쓰러워서 성금을 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이윤이 목표입니다. 쿠팡은 과일·채소농가 지원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성장해야 하는 신선식품 비중도 늘릴 수 있겠죠. 컬리는 경쟁 채널에 없는 차별화된 상품을 단독 판매할 수 있게 됩니다. 객단가도 높아지고 충성고객도 증가합니다.
그래도 상생은 상생입니다. 농가와 소비자, 기업이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거래도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칭찬해 주고 북돋아 줘야 더 많은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일 겁니다. 이는 기업에도 해당되는 논리입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생 행보에 나서는 기업이 늘어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