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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미쳤어요" 전략 내세운 ETF 운용사…진짜 밑지고 팔까

  • 2025.02.20(목) 09:00

차별화 어려운 대표지수 ETF…해외도 보수전쟁 진행중
출혈 보단 투자…입문상품 장벽낮춰 투자자 확보 전략
상위권 삼성·미래…타 상품 보수 높여 수익성 지키기도

"사장님이 미쳤어요"

지나가는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거리의 마케팅 전략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국내 서학개미들에게 가장 친숙한 미국 대표지수(S&P500, 나스닥100)에 투자하는 ETF의 보수가 '제로(0)' 수준까지 떨어지며 출혈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ETF를 내놓는 자산운용사들이 적자를 감수하며 보수인하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철저한 계산이 깔린 전략이다.

물건을 파는 가게의 사장님이 정말로 무한대 적자를 감수할 정도로 미쳤을리 없듯 ETF를 파는 자산운용사도 마찬가지다. 

S&P500, 나스닥100과 같은 대표지수 ETF는 운용 역량에 따른 차별화가 어려운 만큼 보수 인하가 경쟁력 확보의 핵심 수단이다. 투자자가 처음 접하기 좋은 일부 상품의 '파격적 보수 인하'를 통해 고객 저변을 넓히고 장기적인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마케팅으로 봐야한다. 실질적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 카우'는 따로 마련해둔 상태다.

세계 1,2위 운용사도 피하지 못하는 보수전쟁

지난 6일 미래에셋운용은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0.07%에서 0.0068%로 낮췄다.

다음날인 7일 삼성운용은 기다렸다는 듯 'KODEX 미국S&P5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0.0099%에서 0.0062%로 내렸다. 이어 11일 KB자산운용은 'RISE 미국S&P500'와 'RISE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0.01%에서 각각 0.0047%, 0.0062%로 파격 인하했다.

미래에셋운용이 신호탄을 쏘자, 다른 운용사들이 즉각 대응한 것이다. 운용사들이 사실상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보수를 인하한 이유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표지수 ETF는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특성상 운용 역량에 따른 수익 차이가 크지 않다. 따라서 보수를 낮추는 것이 곧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제공한다. 비용 절감은 투자자의 장기 수익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는 투자자 확보시 유리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수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1위, 2위 운용사인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전세계 1위, 2위 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도 보수전쟁은 익숙하다. 그것도 S&P500지수에서다.

지난 2019년 뱅가드는 2010년 출시한 'Vanguard S&P500 ETF(VOO)'의 총보수를 0.03%로 낮췄다. 보수 인하 이후 VOO의 순자산은 지난 2000년 출시한 블랙록의 'iShares Core S&P500 ETF(IVV)' 수준에 가까워졌다. 이에 블랙록도 2020년 IVV의 총보수를 0.03%로 낮췄으나 비교적 늦은 대응으로 인해 자금 유입 흐름에 차이가 발생했다.

현 기준 VOO의 순자산은 6338억달러, IVV는 6107억달러로 순위가 바뀌었다. 1993년 상장해 ETF 시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SPDR S&P500 Trust ETF(SPY)'의 순자산(6320억달러)도 넘어섰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총보수가 0.0945%로 높았던 탓에 VOO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같다. 국내 투자자는 VOO를 18억3061만달러 보관하고 있다. SPY는 18억902달러, IVV는 3억8470만달러로 차이를 보였다.

출혈경쟁이라는 우려에도 운용사들이 보수 인하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투자자들은 더 저렴한 보수를 원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운용사들은 이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최저보수' 내걸었지만, 운용보수 높이는 상품도 많아

특히 S&P500 및 나스닥100 ETF는 미국주식에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들이 '입문용'으로 접근하기 좋은 상품이다. 테마형 ETF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며, 한국·일본·유럽 등 다른 국가의 대표지수보다도 우수한 장기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연금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미국 대표지수를 매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S&P500, 나스닥100 등 미국 대표지수 ETF에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집중되는 만큼 운용사들은 최저 보수를 내세워 투자자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며 "해당 ETF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도 "사실 미국 대표지수 ETF는 이미 낮은 보수로 인해 적자나 다름없었다"며 "0.01% 밑으로 내려가는 이번 보수 인하 경쟁은 수익성보다 브랜드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쟁은 운용사의 수익성을 낮출 수 있지만 ETF 투자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낮은 보수로 인해 투자 비용이 절감되면서 장기적인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ETF에서 보수 인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초지수형 ETF가 아닌 테마형 ETF에서는 여전히 높은 보수를 유지하면서 운용사의 수익성을 보완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지난 2023년 기준 삼성운용은 순자산 1위 상품인 'KODEX 200'(6조5612억원)을 통해 71억원의 수입을 거뒀지만, 순자산 2조원 규모의 'KODEX 레버리지'에서는 117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미래에셋운용도 마찬가지다. 순자산 1위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6조6923억원)에서 10억5000만원을, 순자산 1조8796억원 규모의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에서는 109억5700만원의 수입을 거뒀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운용사들은 특정 업종에 집중하거나, 특정 투자전략을 활용하는 테마형 ETF 출시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인공지능(AI) 관련주, 커버드콜 전략 등에 투자하는 테마형 ETF가 대거 상장한 이유다. 테마형 ETF의 총보수는 0.01%대인 기초지수형과 다르게 대부분 0.1%를 넘게 책정돼 있다. 운용사 입장에서 수익성이 10배 높은 시장이다.

특히 최상위권 운용사인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은 일부 ETF의 운용보수를 소폭 높이면서 기초지수형 ETF의 수익 감소를 상쇄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월말과 올해 1월말 전체 ETF의 운용보수를 비교해본 결과 252개의 ETF 운용보수가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27개가 미래에셋운용, 124개가 삼성운용, 1개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ETF였다. 이들 운용사는 운용사가 받는 보수인 운용보수는 높이고, 유동성공급자(LP)등이 챙겨가는 보수는 낮췄다. 다만 투자자 수익률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총보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수를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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