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사고 커피를 주문하는 세상은 참 편리하죠. 하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는 노화하는 우리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릅니다. 지금은 쉬운 기술이 나중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으로 커피를 살 때 쌓이는 정보는 빅데이터가 되어 서비스에 반영되고 궁극적으로는 법·제도 개선까지도 이어지지만, 현금으로 커피를 사는 사람의 정보·의견은 외면됩니다. '디지털 정보격차'는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디지털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는 [디지털, 따뜻하게]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디지털 뉴딜'을 추진합니다.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AI) 같은 첨단 디지털 산업에 8139억원을 투자해 코로나19로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3차 추가경정예산 중 과기정통부에 할당된 8740억원의 거의 대부분이 이같은 '디지털 뉴딜'에 투입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경색된 경제 활동을 디지털로 풀어보려는 시도는 좋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소하려는 차원의 '디지털 포용 및 안전망 구축' 항목에 배정된 내용을 보면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발견됩니다. 디지털에 가장 취약한 노인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전국에 '디지털 교육센터' 깔린다는데
정부는 디지털 포용 관련 예산으로 농어촌 통신망 고도화에 31억원, 공공와이파이 품질 고도화 및 확대 구축에 518억원,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에 503억원 등을 배정했는데요.
이를 통해 디지털을 통한 일상생활, 경제, 사회활동이 가능토록 기획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특히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누구나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센터 등 생활 SOC(사회간접자본)를 '디지털 교육센터'로 운영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디지털 종합역량교육을 추진할 계획이랍니다.
구체적으로 1000개 교육센터별로 교육강사 2명, 디지털서포터즈 2명을 배치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기차표 예매, 모바일 금융 등 디지털 활용뿐만 아니라 디지털 윤리, 데이터 리터러시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디지털 종합역량을 교육한다는 구상입니다.
◇ 디지털 포용에 '노인 실종'…가족해체가 원인
일단 디지털 포용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예산이 당초 계획(600억원)보다 100억원이나 줄었습니다.
지난 6월 초 디지털 뉴딜 정책이 발표될 당시 관련 예산은 8324억원이었는데, 7월 초 예산이 확정될 때 185억원이 감소했기 때문인데요. 감소분의 절반 이상이 디지털 역량 강화 항목에서 발생한 겁니다.
과기정통부는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집행일수가 감소한 탓이라고 설명하지만, 유난히 이 항목만 대폭 감소한 게 아쉽습니다.
아울러 '전 국민 대상'이라는 대목은 우리나라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의 핵심과 간극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디지털 활용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노인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병원이라면 응급환자부터 먼저 살리는 게 순서라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2019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보취약계층' 가운데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64.3%로 가장 낮았습니다. 일반인을 100%로 설정하고 비교한 지표인데요. 노인의 어려움은 다른 취약계층인 저소득층(87.8%), 장애인(75.2%), 농어민(70.6%)과 비교해도 눈에 띕니다.
고령층이 가장 취약한 이유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특성 탓입니다. 고령층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 중 1순위는 '가족에게 문의한다'는 응답이 81.9%로 압도적이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독거노인이 급증하고 있어서죠.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65세 이상 인구 중 1인가구는 54만명이었는데 지난해는 150만명까지 급증했습니다. 176%나 치솟은 겁니다. 소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65세 이상 인구 역시 같은 기간 126%나 증가해 768만명이 넘습니다.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1인가구의 증가는 대부분 연령에 걸쳐 발생하는 빅트렌드입니다.
◇ 사람에 대한 이해도 높여 정책 마련해야
물론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딸, 아들이나 손자·손녀를 대하듯 편안하게 자주 물어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어떨까요.
교육센터 한곳에서 강사 2명이 수십, 수백명의 고령층을 불러모아 일률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디지털 활용 능력을 제대로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분위기의 전환도 요구됩니다. 우리는 일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여유가 없는데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금도 사업주의 관심 부족, 조기퇴직 관행 등으로 50세 이상 재직자의 교육훈련참여율은 9.8%에 불과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디지털 뉴딜'이 만드는 교육센터에 방문해 디지털 기술 활용법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디지털 정보 격차가 지속되는 것은 스마트폰을 못쓰는 수준의 불편 정도가 아니라, 디지털이 만드는 혜택을 특정 계층이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모두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