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계단입니다. AI가 게임 품질을 꼭대기로 올라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인수 넷마블 AI센터장은 게임 산업에 쓰이는 AI를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는 기술적 한계로 계획보다 아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게임 품질을 지금은 AI를 통해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넷마블은 콘텐츠 추가, 게임의 사후 관리 등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AI를 통해 게임 품질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젤란실의 무기는 '언어'
넷마블 AI센터의 양대 산맥인 콜럼버스실과 마젤란실은 각각 게임 운영과 게임 개발을 맡는다.
마젤란실의 핵심은 언어다. AI를 바탕으로 음성 명령 기술을 적용하거나 음성을 합성하고, 번역을 더 자연스럽게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2020년 넷마블이 개발한 모바일 배틀로얄 게임 'A3: 스틸얼라이브'에는 음성 인식 기능 '모니카'가 있다. 게임 내에서 "메인 퀘스트를 시작해"라고 말하면 모니카가 퀘스트를 실행한다.
오 센터장은 "출시 당시 A3는 굉장한 고품질의 게임이었는데, 하이엔드(최고 품질)급 게임에 음성 명령을 넣은 것 자체가 세계 최초"라며 "이제는 게임에 영향을 안 줄 정도로 AI 모델을 작게 하는 최적화에 신경쓰다보니 연구 초점이 점차 음성 합성에 맞춰졌다"고 말했다.
음성 명령 기술이 더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AI 모델의 크기가 커야 한다. 쉽게 말해 음성 명령 기술이 갖고 있는 보따리가 커야 이용자가 원하는 명령을 더 많이 꺼내 쓸 수 있지만, 보따리가 너무 무거워 게임할 때 버벅임 등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AI 모델이 너무 작으면 음성 명령 기술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넷마블 AI센터는 고민 끝에 작은 AI 모델과 음성 인식을 결합한 음성 합성 기술을 발전시켰다. 음성 합성은 기존 성우의 목소리에 생성형 AI를 덧붙이는 기술로 이를 통해 외국어, 사투리 등을 구사하는 다양한 사람의 음성을 만들 수 있다.
오 센터장은 "무한히 새로운 캐릭터가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게임이 있다고 가정할 때, 어떤 캐릭터가 미리 나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일이 성우를 초빙해 대사를 녹음하게 할 순 없다"며 "게임 장르가 지금보다 더 다양해지거나 기존 장르 외의 게임이 유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콘텐츠가 나오면 음성 합성 기술을 언제든 적용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홍윤석 음성언어AI팀장은 "최근 하나의 게임에 200개, 심하면 300개가 넘는 캐릭터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게임을 만드는 곳에서 음성 합성 기술을 써보고 싶다고 문의해오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회사 내부에서 3~4개 게임에 대해서도 음성 합성 기술을 적용해보자는 논의가 있었다"며 "적용 후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올해 중에도 이 기술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AI 바탕의 기계 번역으로 영업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구상도 언급했다. 오 센터장은 "어느 나라의 경우 게임 시장 규모가 작아 사람이 번역하는 비용을 포함한 운영 비용이 게임 매출보다 더 발생한다"며 "그런 곳부터 기계 번역을 적용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내부적으로 일부 구간까지는 사람이 번역한 후 나머지 뒷부분은 기계 번역을 쓴 적이 있다"며 "기계 번역을 적용한 뒤에도 게임 이용자 잔존율이 줄지 않아 이 기술을 써도 괜찮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똑똑한 '과속 방지 카메라' 만드는 콜럼버스실
게임회사의 지독한 고민 중 하나는 게임 발표 후 발생하는 '어뷰징' 문제다. 어뷰징은 게임회사가 허용하지 않는 방식이나 이용자들이 시스템 허점을 악용해 게임 기획 의도와는 다른 플레이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어뷰징은 사실상 전 세계 모든 게임회사들이 겪는 문제다.
오 센터장은 어뷰징을 감지하는 '게임 이상 탐지 시스템'을 과속 방지 카메라로 빗댔다. AI를 적용해 이 카메라가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엔 시속 100킬로미터(㎞) 속도 제한 카메라 앞에서만 과속하지 않으면 됐다"며 "조금 발전시킨 시스템도 구간 단속 형태와 다르지 않았다. 일부 구간에서 과속을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지나가면 문제가 없는 것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AI 덕에 모든 이용자의 평소 플레이 패턴을 보고, 이 중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이용자만 파악한다"며 "게임 흐름 변화 등으로 이용자의 전체적인 행태가 바뀌어도 계속 AI가 스스로 학습해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어뷰징 차단 성과는 지표로 나타났다. 오 센터장은 "기존 방식대로 어뷰징을 차단하면 한달에 500건 정도"라며 "게임 이상 탐지 시스템을 써서 기존보다 21% 더 많이 어뷰징을 제재하기도 했다"고 했다.
넷마블 AI센터는 게임 제작부터 출시 이후까지의 게임 품질을 높이는데 더욱 주력할 방침이다. 오 센터장은 "어뷰징을 놔두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이용자가 더 손해를 보거나 더 이상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안 될 수도 있다"며 "게임 퀄리티를 높일 계단이 되는 기술을 빨리 만들어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